정부의 원격의료 추진 정책이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제도화를 위해 의료IT 혁신센터를 신설하고 예산도 올해 10억 5500만원에서 내년에 25억 7000만원으로 대폭 증액했다.
지난 달 31일에 마감한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도 전화상담을 통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적 요소가 있다며 의료계 일부가 반대하는 가운데 2000여 곳이 신청을 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원격의료 홍보 만화에도 초기에 강조했던 섬이나 오지, 거동불능자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시행한다고 했던 것에서 살짝 비켜나 경증질환이나 만성질환도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 정책이 국민 건강 보다는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한다는 우려는 여러 경로로 제기되어 왔다. 오늘은 좀 다른 측면에서 원격의료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OECD 통계 등을 보면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으로 지나치게 병원중심적이고 일차의료가 취약한 것으로 나온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달리 주치의제도가 미비하고 의료전달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못하고 환자들의 의료쇼핑이 만연해 있다.
동네의원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현재 원격의료에 대한 준비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곳은 대형 병원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빅4라고 할 만한 병원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원격의료를 강행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의료전달체계는 더욱더 붕괴되고 환자들은 대형병원으로 쏠리게 된다. 가뜩이나 취약한 우리나라의 일차의료와 의료전달체계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격이다.
진료를 하다 보면 원격의료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전화진료 등이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
말 그대로 만성질환자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라든지, 이 질환으로 병원에 가야할지 꼭 그렇지는 않은지 애매한 상황이라든지, 감기에 걸린 학생이 꼭 조퇴를 해야 하는지 하는 상황들이다.
벽오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환자들이 모두 병원까지 꼭 오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많다.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한다면 여러 불편을 감소시킬 수도 있고 꼭 필요한 환자의 진료에 더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나라에서도 의사와의 전화상담이 의료체계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으며 우리나라 의료계가 갖는 것과 같은 불안감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나라들은 주치의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으며 원격의료나 전화진료도 주치의에게만 허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격의료가 의료체계를 붕괴시키지 않으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실례로 일차의료 강국인 이스라엘 같은 경우도 소아진료의 많은 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덴마크의 주치의도 출근해서 첫 한 시간은 전화진료로 추적관찰해야 할 환자의 상태 확인은 물론 그날 병원에 꼭 와야 할 환자를 가려주기도 한다고 한다.
이 주치의들은 거동도 불편하고 병원에 나오지도 못하지만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에게는 왕진도 나가서 돌 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담론은 전혀 없이 오로지 원격의료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만 있다. 원격의료 자체는 선악이 아니다.
그것은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취약한 일차의료와 의료체계를 망가뜨리는 위협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원격의료 이전에 주치의제도 같은 일차의료가 든든하게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처럼 의료쇼핑 천국이냐 하는데서 갈라진다.
원격의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환자 진료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원격의료가 환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의료체계를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원격의료 이전에 주치의 제도 같은 올바른 일차의료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밀어붙이는 원격의료는 편리함보다는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재앙이 될 공산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가 그런 상태이다.
[본 칼럼은 메디게이트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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