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도 국고지원금 미지급 인정…"강제성 없는 지원 규정 손질하고 재정 확충 대책 마련을"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지난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급격한 건강보험재정 악화의 원인에 대한 질의에 “법에 명시된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정부가 2007~2019년까지 13년간 미지급한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은 21조원이 넘는다.
2018년 말 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재정 수입은 62조1159억원(건강보험료 수입 53조6415억원, 정부지원금 7조802억원, 기타수입 1조3942억원)이었다. 반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62조2937억원(요양급여비 60조5896억원, 기타지출 1조7041억원)으로 1778억원의 당기적자를 기록했다. 2017년까지 7년째 기록했던 당기흑자가 8년만에 적자로 돌아서면서 국회에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의 2018년 누적적립금은 20조5955억원이다. 문재인 케어(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등으로 2022년 누적적립금이 절반에 이르는 10조~11조원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건강보험에 지급하지 않은 국고지원금이 13년간 21조589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07년부터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14%는 일반회계(국고)에서, 6%는 담뱃세(담배부담금)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2007~2017년 실제 건강보험료 수입의 20%에 해당하는 78조7206억원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미납액은 17조1770억원(국고 7조1950억원, 건강증진기금 9조9820억원)으로, 이 기간 법정지원액 기준(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크게 부족한 평균 15.45% 정도만 지원해왔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선 이후에도 2018년과 2019년에 국고지원금 4조4121억원을 미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재정 적자 우려에 복지부 "적립금 10조원 이상 유지할 것"
이런 지적은 19일 보건복지부 업무 보고에서도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정의당)은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발생했다. 이는 정부가 법적으로 건강보험에 지원해야 할 정부 부담금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환자가 전액 부담했던 비급여 진료를 급여화하는 ‘문재인 케어’가 지난해 7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건강보험 보장을 강화해 재정부담은 갈수록 커졌는데도 정부가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종필 의원(자유한국당)도 “건강보험이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는 건보 재정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2017년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필요한 예산으로 30조6000억원을 잡았다. 이 중 20조원을 건보 누적적립금에서 쓰겠다고 했다"며 "2022년 이후에도 적립금 10조원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에서 건보재정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보장성 강화대책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해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 예산은 2019년 7조9000억원으로 예년에 비해 최대 규모로 전년 대비 7000억원을 증액했다"라며 “기존에 발표한 바와 같이 2022년 이후에도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지 않고 약 10조원 이상의 적립금을 보유할 수 있도록 재정관리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고 했다.
복지부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정상추진 중"이며 "정부지원 확대, 수입기반 확충, 재정지출 효율화 등을 통해 향후에도 적립금이 고갈되는 일 없이 국민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보험료율 인상수준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모호한 국고보조금 지급 규정 손질하고 안정적 재정 확보를
건강보험 전문가와 의료계에서 보장성 강화 확대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유명무실한 국고보조금에 대한 지급 규정 자체를 손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급 규정이 모호해 강제로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한시적인 규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재정수입 관련 주요 과제' 보고서에서 “정부지원금은 매해 보험료 예상 수입의 20%를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고 모호하게 돼있다. 또한 국민건강증진지금에서 지원받는 규정도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 제1항 ‘예산의 범위에서’와 제2항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문구는 강제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시적 지원 기간도 문제다. 국민건강보험법 및 국민건강증진법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지원 기한을 2022년 12월 31일까지로 규정했다. 2017년 개정을 통해 지원 기간을 2022년 12월 31일로 5년 연장했으나, 2022년 이후의 국고보조금에 대한 규정은 없다.
신 위원은 국고지원금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인 2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불확실한 수입 규정을 없애고 재정 확충을 위한 대안이다.
첫 번째로 ‘해당 연도의 보험료 예상 수입액’을 전전년도 보험료 수입의 20%로 변경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 위원은 “전전년도 보험료 수입액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반회계에서 지원해야 한다. 전전년도 보험료 수입액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을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에서 지원하고 전전년도 보험료 수입액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한다는 규정을 넣어야 한다”라며 “2022년까지라는 한시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보험 재정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 국고지원 규모의 증가율을 일반회계 증가율(최근 3년간)에 연동하되 부족한 재원은 간접세(목적세) 방식으로 별도 확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의료계도 보장성 강화 정책과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2020년 건강보험 재정 적자는 5000억원에서 최대 11조원, 2060년에는 66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건강보험재정운영 특별위원회 결과보고서에서는 국고 지원율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에서 실제 수입액의 20%로 바꾸고, 사후정산제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예상수입액은 과소추계되고 있어 실제 지급해야 할 국고지원금이 축소되고 있다.
의협은 “단순히 국고 지원 효력을 연장하는 등으로 소모적인 노력을 펼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고 지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며 “건강보험 재정은 인구 구조와 질병 양상의 변화, 사회경제적 요인, 국고지원 축소를 주장하는 정치적 요인 등 많은 위험과 과제를 안고 있다. 국고 지원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안정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뜻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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