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충분한 논의 필요한 원격의료 추진
코로나19의 방역 대책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비대면 의료, 전화 처방으로 구성된 원격 의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5월 7일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며 원격의료를 비롯한 비대면 산업에 대한 비전을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비대면 산업 육성은 추진하지만, 기존 시범사업 대상을 확대하고 한시적으로 완화된 전화 상담, 처방의 인프라를 보강하는 내용에 국한될 뿐이다. 원격의료의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료법 개정을 포함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검토돼야 할 문제"라고 이유를 밝혔다.
원격의료는 수년간 지속된 단골 논쟁거리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의사가 화상으로 진료를 하고, 가정용 검사기로 검사를 하고, 약은 병원에서 택배로 바로 보내서 환자가 받으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수많은 법적 문제들과 한국의 아슬아슬한 의료전달체계 문제가 얽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20년 전부터 시행한 ‘의약 분업 제도’다. 전문의약품은 의사가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대면 진료 후 처방하고, 약사는 직접 환자에게 복약법을 지도하고 약을 조제하는 것을 법으로 한다. 그러므로 전문의약품을 택배로 보내는 것도 불법이다. 진료와 약의 조제, 분실의 책임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맞춰 수십 년간 한국 의료시스템이 뿌리 내렸다.
이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대부분의 주거 지역에 퍼져 있고 약국은 병원 근처에 있다. 현재 논의되는 방식대로 원격의료를 시행하면, 환자가 의사에게 원격으로 진료를 받아봤자 어차피 약국까지 직접 가서 약을 받아야 한다. 진료를 집에서 편하게 본다는 편익이 사라진다.
타 국가와 비교하며 원격의료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각 나라의 의료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처럼 오지가 넓지 않고, 일본처럼 섬이 많지도 않다. 국민들은 주거지역에 높은 밀도로 모여 살고, 의료 취약지는 보건지소, 보건진료소가 담당한다. 대한민국만큼 국민 대부분이 가까운 곳에서 전문의를 당일에 만날 수 있는 나라는 없다시피 하다. 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온 시스템이 코로나19를 극복한 힘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 있는 문제를 쉽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
정부가 말한 대로 원격의료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검토되고 신중하게 합의돼야 한다. 정부의 신중한 태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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