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변호사 “이대목동병원 사건 등 충원 요구 무시하다 사고 발생 시 구속될 여지…병원장 기피 현상 발생 가능"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부족한 인력을 충원해달라는 교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병원장. 이후 병원 내에서 인력 부족 문제에 기인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병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에 따라 구속까지 될 가능성이 있다.
법률사무소 선의 오지은 변호사는 10일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춘계 세미나에서 ‘의료기관이 알아야 할 중대재해처벌법’ 강연을 맡아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이에 따라 최근 필수의료과들을 중심으로 한 전공의 부족, 중소병원들의 고질적 간호 인력난 등이 심각한 병원계에 중대재해법이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의 인력 부족 호소에도 이를 방치하다 사고가 나면 병원장이나 이사장이 감옥에 가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은 상시근로자가 5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료기관의 경우 이사장이나 병원장)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다 하지 못해 중대산업재해 또는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강력한 처벌(사망자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게 한 법이다.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 2명 이상, 직업성 질병자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산업재해를 뜻하며,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이 원인이 돼 발생한 재해로서 중대산업재해와 유사한 피해가 발생한 재해를 의미한다. 특히 연면적 2000㎡ 이상이거나 병상 수 100개 이상인 의료기관은 중대시민재해도 적용받는다.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선 지난 1월 27일부터 적용되기 시작됐으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유예기간을 두고 2024년 1월 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오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은 법률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고 아직 시행규칙도 없는 상황이라며,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을 참고해 중대재해법이 의료기관에 미칠 영향을 소개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의료계의 인력∙시설 부족 문제로 환자 등이 사망하는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하면 병원장이나 이사장이 처벌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단 지적이 이목을 끌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안전이나 보건에 관해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가 지도 조언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에서는 보건 및 안전 관리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구성토록 하고 있는데 해당 조직의 구성원들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료기관에 대입하면 이 조직에 속한 의사들이 의료사고 우려 등으로 인력∙시설 확충을 요구했음에도 병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향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병원장과 이사장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오 변호사의 설명이다.
오 변호사의 이 같은 예상은 전의교협 김장한 회장이 지난 2018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한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김 회장은 “당시 전의교협은 교수들이 신생아중환자실 인력 부족을 지속적으로 호소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병원장과 재단 이사장을 형사 처벌하라는 성명서를 낸 적이 있다”며 “이제는 그렇게 인력이나 시설 확충 요구를 했는데 병원장이 받아들이지 않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중대재해법으로 처벌을 받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오 변호사는 “가능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상에선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의 지도 조언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의료기관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교수들의 인력 충원 요구 등을 무시하다가 사고가 날 경우 병원장이 구속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실제로 마을버스 등 운송사업을 하는 업체에서 인력 부족으로 기사가 운행 중 졸다가 사고가 나면 중대재해라고 볼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설명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오 변호사는 도급∙용역∙위탁 등으로 제3자에게 일을 맡긴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병원장이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중대재해법 5조는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한 경우에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지만 법 적용시 책임 주체가 포괄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오 변호사는 “가령 병원에서 주차장 공사를 발주했는데 거기서 사고가 날 수 있다”며 “그런데 병원이 단순히 발주만 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나오면 중대재해법상 책임을 병원장이 지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물론 아직 이 법으로 재판이 이뤄지지 않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관계 법령을 볼 지도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가정형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중대재해법에 따른 처벌 가능성이 모호한데다 처벌 수위 자체도 높기 때문에 의사들이 병원장 직을 꺼리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오 변호사는 “실제로 건설사들의 경우 CSO(최고안전책임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CSO 연봉이 CEO보다도 높은 경우들도 있다”며 “그래도 인력이 구해지지 않아 중대재해법이 유예되는 기준으로 회사를 쪼개거나 해당 분야 사업을 접는 등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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