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시절 다른 직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있었다. 우린 그것을 ‘도망’ 이라고 불렀다"
드루와, 드루와… #1.
그동안 내 경험의 얘기를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깔대기(‘자기 자랑’을 의미하는 은어라고 함)가 되어버렸는데...
내가 뭐라고 잘한 일만 있겠나...
의사가 아닌 분들은 전공의라고 하더라도
직장생활이라고 생각 하실테니 잘 이해가 안 되실거다.
이 인턴이나, 레지던트라고 하는 직역이 월급을 받기는 하지만
노동 강도나 시간으로 볼 때 민주노총 입장에서 보면 거의 착취 수준이지만
실제로 근무를 하는 전공의 입장에서는
반 직장, 반 수용소의 개념이어서
다른 직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있었다.
우린 그것을 ‘도망’ 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전공의법‘으로 인해 주 80시간으로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으나
내가 전공의 할 때만 하더라도 그런게 없었다.
주 80시간이면 도대체 하루에 몇 시간 인거냐?
80 나누기 7이면 대략 하루 11시간?
보통의 경우 대학병원의 하루 일과는 7시에 시작이니
그럼 오후 6시면 퇴근인건가?
일주일에 하루를 놀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잡을 경우
80 나누기 6이면 대략 하루 13시간?
그럼 저녁 8시 퇴근...
우리 때는 아예 그런 개념이 없었는지라...
1년차가 되면 100일 당직이라고 해서
1년차가 된 후 100일 동안 병원에서 사는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이 1년차가 된 후에
일을 빨리 배워야하니 100일 동안 집에 보내지 않고
일을 가르치는(시키는) 제도(?)가 있었다.
옷?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데 그런거 신경이나 쓰겠나?
집에서 부모님이 가져다주면 좋고
아니더라도 그냥 수술복 입고 다니면 되니까...
속옷?
안 입을 때도 많았다...ㅋ
양말?
캐비넷에 던져서 붙을 정도까지 신기도 하고
어짜피 슬리퍼 신고 다닐거라 아예 맨발로 다니기도 했다.
퇴근?
그게 뭐야?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잠을 못자고 버티는데
원래 의사들이라는게
의과대학 다닐 때부터 잠을 안자는 트레이닝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은 사람들이라서
웬만해서는 잘 버티는데
외과 1년차는 그야말로 죽음이다.
교수님과 회진할 때 환자의 침상 발치의 프레임을 잡고 서서 졸기도 하고
수술방 탈의실의 맨바닥에서 수술가운을 덮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었다.
그나마라도 삐삐가 울리기 전까지라 그렇게 쪽잠을 자는 것이
10분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1999년 당시 강남성모병원의 외과 1년차의 근무환경은 최악이었는데
12명의 교수님이 계시던 의국에
1년차 3명, 2년차 2명, 3,4년차 각1명 씩
총 7명의 레지던트가 있었더랬다.
A-part(hepatobiliary, Breast/Thyroid, Stomach, Everyology)에 1,3년차,
B-part(Vascular, Pediatric surgery)에 1,2년차,
C-part(Colorectal)에 1,2년차가 배정되고
4년차는 여기저기 빵꾸 때우기에 배치되었었다.
(단, 빵꾸가 발생하면 안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는 1년차 후반부 6개월을 강남성모병원에 있었는데
동기 2명과 A,B,C-part를 각 2개월씩 순환배치 받았었다.
순서는 B,C,A...
최악의 part는 어딜까? 당연 A지...
나보다 먼저 A-part를 경험한 내 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다가올 공포에 떨고 있을 무렵...
어느날 아침, A-part의 동기 1년차가 보이지 않는다.
7시에 시작하는 conference에 나타나지 않았다.
뭐 뻔한거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교수님들이 말씀하신다.
“ 도망이냐? ”
“ 예, 그런거 같습니다. ”
의국장 4년차 형이 말했다.
“ 삐삐 쳐봤어? ”
“ 예, 그런데 안 받는데요. ”
“ 언제 나간거야? ”
“ 어제 밤에는 있었는데 아침부터 없습니다. ”
“ 새벽에 튀었구만... ”
일부의 교수님들은 웃기도 한다.
하긴 어디 한 두 번이었으랴?
“ 지금은 안 받을테니 이따가 오후쯤 다시 해봐라. ”
“ 예. ”
빠삐용...
그는 그렇게 자유를 찾아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가 이틀만에 다시 들어왔다.
부러웠다.
그동안 잠은 실컷 잤을테니...
“ 형, 나가서 어디 갔었어? ”
(왜 형이냐구? 아 왜 지난번에 말 했잖냐, 내가 쓴 논문 줬다는 그 동기 말이다.)
“ 잤어. ”
“ 어디서? ”
“ 모텔에서 ”
“ 어디 모텔? ”
“ 이 근처... ”
(하긴 지가 가봐야 촌놈이 어디 아는 데나 있겠냐...)
“ 나가서 뭐 했어? ”
“ 잠자고 밥 먹었어. ”
“ 뭐 먹었어? ”
“ 설렁탕 ”
“ 좋았겠다... 그리곤 또 뭐했어? ”
“ 하긴 뭘해... 그냥 이렇게 들어왔잖아. ”
26시간을 잤다고 했다.
깨보니 이틀이 지났고, 피곤이 좀 풀리니 겁이 덜컥 나더랜다.
결국 나비는 그렇게 돌아왔다.
Return to the Alcatraz...
교수님들은 특별히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잘 돌아왔다고 격려하고 감싸주었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관두지를 못하는 거라고... 외과 전공의가...)
이후 이 형은 두 번의 탈출을 더 감행했고
매번 뽀송뽀송한 얼굴과 미안함을 담은 표정으로
늦은 저녁때쯤 의국 당직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왔다.
잠을 많이 잤다는 것은 부러웠으나
맡은 환자를 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것이
나에겐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지옥같은 곳에서도 시간은 흘러흘러
2000년 1,2월 내가 A-part가 되었다.
그동안 이 형 말고 다른 동기 녀석도 2번인가 3번인가 병원 밖 공기를 마시고 왔더랬다.
나?
한번도 도망 안 나갔다.
그때까지는...
▶2편에서 계속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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