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05.19 06:29최종 업데이트 17.05.1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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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나면 의사는 죄인이 됩니다"

[기획]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비극②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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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적 사고로 산모와 태아가 숨지는 사건을 겪으며 2억 5천만원의 위자료 지급과 함께 업무상과실치사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산부인과 전문의 A씨.
 
당시 사건을 겪으며 A씨는 분만을 접었다. 

분만을 포기했다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A씨는 환자의 임상 소견을 태반 조기박리로 판단해 수술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환자의 사망 원인이 '전치태반에 의한 과다출혈'로 나오자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모가 전치태반이었다면 유도분만을 하지 않았을텐데 결과적으로 자신이 산모뿐 아니라 아기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감에 짓눌려 살았다. 
 
A씨는 잠을 잘 수도 없었고, 환자들을 진료할 때면 겁부터 났다. 산모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A씨는 산모의 사망원인이 태반 조기박리라는 점을 여러 임상의들의 소견을 통해 인정받았고, 경찰 또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받아들이자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었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갔다.
 
A씨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의사는 기득권자로, 환자는 약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면서 "이런 편파적인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C씨도 의료분쟁을 겪고 난 뒤 분만을 포기했다. 

10여 년 전 C씨는 출산 경험이 있는 산모 D씨의 분만을 맡았다. 분만은 순탄하게 잘 끝났지만 산모 출혈이 심해 곧바로 큰 병원으로 전원했다. 산모만 이송할 수 없어 아기도 함께 보냈고, 이후 다행이 D씨가 회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
 
이후 한 달 정도 지났을까, C씨는 D씨의 신생아가 이상하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CT를 찍어봐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이내 아기가 뇌성마비(CP)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산모와 가족들은 C씨에게 분만 도중 아기가 잘못됐다며 밤낮없이 전화를 했고, 이는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산모 측은 4kg이었던 거대한 아기를 무리하게 자연분만하도록 해 아기의 머리가 몰딩됐고, 이것이 뇌성마비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판사는 C씨에게 70%의 과실 책임이 있다며 D씨에게 손해배상 비용 2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했고, 2심에서 이를 뒤집기도 어려웠다.
 
C씨는 "분만 당시 아기가 잘 태어났고 아무 이상 없이 울음도 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을 산모와 보호자도 다 알고 있었다"면서 "아기가 갑자기 CP 판정을 받아 의아했고, 그 때는 정말 억울했지만 판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소송을 겪으면서 앞으로 다시는 소송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분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C씨 역시 A씨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런 일을 또 다시 겪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C씨는 "환자가 잘못되길 바라는 의사가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렇지만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의사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만약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제대로 잘잘못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C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정말 중요한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전달될 수 있을까, 왜곡돼 전달되지는 않을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의사는 일단 의료사고가 나면 과실이 없어도 늘 죄인이 되는 것 같다"면서 "의사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안타까운 불가항력 상황은 언제든 불시에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국가 배상,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필요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해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부터 의사들을 보호할 수 있고, 분만을 포기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만들었듯이 의사들로 하여금 소신진료를 보장하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처할 수 있도록 특례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운전자가 운전 과정에서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와 건조물·재물의 손괴의 죄를 범했더라도 운전자에 관한 형사 처벌 등에 특례를 적용하는 것으로, 교통사고 가해자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다. 
 
김동석 회장도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과실을 제외하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와 고의과실이 아닌 사고 등은 특례법을 적용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김동석 회장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국가에서 배상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일본은 의료 과실 없이 뇌성마비 신생아를 출산했을 때 국가에서 3천만엔(약 3억원)을 20년간 분할로 지급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특히 김동석 회장은 "의료분쟁자동개시법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등을 담당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형사사건 자료수집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이럴 바엔 차라리 중재원을 해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동석 회장은 "의학은 계속해서 발전하는데 산부인과 전공의가 감소하는 현실은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면서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등으로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분만 # 의사 # 의료사고 # 산부인과 # 산모 # 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jhhwang@medigatenews.com)필요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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