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건강보험 급여화 정책으로 검사 폭증으로 인한 번아웃(Burn out)에 시달리고 있다.

절대적인 검사량 폭증과 비교해 영상의학과 의사의 수는 크게 늘지 않으면서 현장 의료진의 소진이 심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과도한 의료쇼핑 등 불필요한 과다진료 등을 막을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검사량 폭증 속 영상의학과 의사 1.3배 늘어…한달 평균 936건 판독해야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구현정 교수는 22일 롯데호텔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대한영상의학회 춘계종합심포지엄 KSSR 2023에서 검사 폭증으로 인한 영상의학과 인력부족과 번아웃(burn out)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구 교수는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급여화 정책에 따라 CT와 MRI의 검사가 폭증했다. 2019년 기준으로 OECD국가 평균에 비해 CT는 1.5배, MRI는 2배에 달한다"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CT와 MRI 건수는 전체적으로 40.9% 증가했다. 초음파 역시 정부의 급여화 정책으로 증가하면서 상복부는 2013년 16만건에서 2021년 322만건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같은 검사 폭증에 비해 영상의학과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이다. 

대한영상의학회 전문의 배출 및 전공의 확보율 추이에 따르면 영상의학과는 1999년 판독료 통폐합, 2000년 의약분업과 의사파업 당시 영상의학과 전공의가 안 들어온 이후 4~5년간 전문의 배출이 급감했다가 최근 다시 전공의 확보율이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구 교수는 "2013년 전문의 수는 3065명이었는데, 10년이 지난 2023년 전문의 수는 4206명으로 1.3배 증가했다. 검사는 10배 늘었는데 전문의 수는 1.3배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략적인 영상의학과 의사의 업무량을 파악하기 위해 총 검사 수를 전문의 수로 나눠 계산했다.

전문의 수는 전문의 중 65세 미만(65세 이상이 15%) 중 인터벤션(약 340명), 10% 사정을 제외한 인력으로 산정해 모두 동일 분량의 일을 한다고 간주해 계산했다.

그 결과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1일 CT 17건, MR 9건, US 21건으로 총 47건을 수행해야 하며, 한 달에 CT 334건, MR 176건, US 426건으로 총 936건을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병원 의사 800건 이상 판독 51.9%…과도한 업무량에 '번아웃' 호소
 

이러한 현실 속에 실제 영상의학과 의사들의 번아웃 상황은 어떨까?

영상의학회는 전문의 511명, 전공의 131명 총 642명을 대상으로 번아웃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전문의 중 개원의는 한 달 검사 수 300~500건이 30.6%, 500~800건이 35.5%로 절반 이상이었고, 대학병원 교수는 800~1000건 28.7%, 1000건 이상 23.2%로 업무량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병원 교수 중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71.6%로 과반을 넘었고 직업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그저 그렇다고 밝힌 비율이 45.7%로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번아웃 검사에서 42점 이상부터를 '번아웃'으로 보는데, 이미 평균이 42점으로 나왔다. 

이러한 번아웃의 원인은 무엇일까 과도한 업무량이 62%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가 24%로 높게 나타났다.

구 교수는 "이러한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의사들이 원하는 것은 업무시간의 감소였다. 또 일과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 인력 충원과 페이 인상 등도 뒤를 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에서 설문조사에 참여한 레지던트 131명 역시 미래 직업으로서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직을 고려한다는 비율이 32%로 낮게 나타났고, 번아웃 지표의 컷오프가 낮아 번아웃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 교수는 "과도한 업무량 문제는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정책이나 수가에 대한 관심이 많이 필요할 것 같고, 어떻게 하면 대학병원에 전공의들을 더 끌어들여서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적정진료 고민 통해 불필요한 검사 수 폭증 막고, 전공의 확보해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영상의학과 황성호 교수는 "수치에서 보듯이 진료량 증가 문제는 확실하다. 하지만 영상의학과 의사가 얼마나 일이 많은 지, 을을 얼마나 더 하면 임금을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며 "영상의학과 의사가 일을 정말 많이한다는 지표나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박수미 교수 역시 "의료계 전체가 번아웃 상태에 빠졌다"며 "우리나라 의료정책은 병원에 환자가 너무 많이 오게 만들고, 한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의료 수요를 너무 많이 만든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질병이 다양한 고령환자가 늘면서 검사도 늘어난다. 방법은 향후 AI가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가 문제다. 모든 의사가 적정 진료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적정진료에 대한 고민을 통해 불필요한 검사 수 폭증을 막아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김영환 교수는 "수련병원 전공의들의 번아웃은 객관적 데이터로 나오는 것처럼 사실이다. 대학 교수들도 절반 가까이가 수련병원을 이직하고 싶다고 한다"며 "그냥 두면 모두가 번아웃이 오고 영상의학과 전체 위기가 올 것이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책은 심플하다. 현재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수요인 검사 수를 줄이고, 공급인 영상의학 의사를 늘리는 것"이라며 "최근 영상의학 적정성 평가가 시범사업에 들어가 의료질평가에 들어간다. 영상의학과 의사의 적절한 판독 수를 평가해 너무 많이 하면 감점을 한다. 이게 본사업으로 되면 병원은 평가가 나빠지면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바라봤다.

그는 "인력공급은 전공의 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주어진 파이 안에서 나눠먹기다 보니 쉽지 않다"며 "정책입안자와의 상의를 통해 전공의 T/O를 늘리는 데 사활을 걸어야만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