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 “문제 해결돼도, 희생 강요하는 현실 변하지 않는 한 복귀하는 전공의 거의 없을 것”
지난해 2월 6일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이 의사인력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사진=보건복지부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2024년 2월 6일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이 돌연 의사인력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을 열고 기존 3058명이던 의대 정원을 27년만에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증원 소식에 충격을 받은 전국 1만 2000여명의 전공의들은 2월 19일을 전후로 자발적인 사직을 시작했고, 의대 재학생의 90%가 학교를 떠났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 역시 즉각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반발에 나섰다.
정부는 이러한 의료계의 일시적인 반발을 '집단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자발적인 전공의 및 교수 사직과 의대생들의 휴학을 강제로 무마하기 위해 각종 행정명령을 내리고 이들을 '환자를 외면한 의사'라며 '의사 악마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에 대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의대정원배정위원회에 의한 의대 정원 배정 과정에서의 석연치 않은 점들이 떠오르며 의대 증원의 정당성과 과학성 등이 점차 훼손당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2025학년도에 한해 의대 증원 규모를 기존 2000명에서 1509명으로 확정했고, 의사단체가 빠진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열어 의료개혁을 '뚜벅뚜벅' 이어갔다.
그러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계엄 포고령의 충격과 함께 의대 정원 증원의 추진자인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서면서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추진동력을 잃었지만 해가 지나고 2025년 새학기가 시작된 3월에도 의료공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의정갈등이 이렇게 장기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1년이라는 의료공백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지 의정갈등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는 사직 교수와 전공의, 휴학 의대생들에게 각자의 심정을 물어봤다.
사직 교수 “정부의 무관심과 방기가 끌고 온 의정갈등…이미 초과사망 발생, 취약지부터 붕괴될 것”
지난해 2월 중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떠난 의과대학에 남은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당직 근무를 서면서 현 정부와 맞서 싸웠다.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의대 정원이 증원된 충북의대는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에 반대하던 교수들이 대거 사직했다. 연말까지 교수 17명이 사직하면서 병원 응급실 기능이 축소되는 등 병원 운영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교수직을 걸고 충북의대 교수비대위원장을 맡아 대학 총장, 충북도지사, 정부와 맞서 싸우다 현재는 부산 좋은삼선병원 순환기내과로 이직한 배장환 전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사건 초기에는 1년이나 지속될지 예상치 못했다고 전했다.
배 전 교수는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의대생들이 휴학하는 문제는 대학병원의 진료 공백과 연관이 된다. 대학병원 진료 공백은 환자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의료 이용에 불편감을 줄 수밖에 없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 중요한 치료를 제공하지 못해 초과 사망이 생기는 것인데 이걸 그대로 두고 볼 정부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1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두 번째로 현 사태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곧 신규 의료인력의 공급 체인을 끊는 것과 같다. 이것은 상급종합병원 인력 공급 문제뿐 아니라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그리고 종합병원 등에도 해악을 미치게 된다. 신규 인력 공급이 멈추게 되면 의료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에 키를 쥔 정부가 이 사태를 그리 오래 끌고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상식 밖의 행동을 보였다. 5~6월이 지나도 정부가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자 배 교수는 그제야 이번 사태가 1년, 길면 2~3년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 전 교수는 의정 갈등이 이토록 장기화된 원인을 ‘정부의 무관심과 방기’에서 찾았다.
그는 “환자들이 불편감을 느끼고 신규 의료인력의 커리어가 절단이 됐는데도, 자기들이 의사 증원으로 의료 문제를 고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정부에게 잘못이 있다”며 “무엇보다 책임이 큰 현 대통령이 내란죄로 헌법재판소에 가 있는 상황까지 가 버리면서, 이 문제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게 됐다”고 우려했다.
그렇게 지나버린 1년의 의료공백은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배 교수는 “이미 환자들은 이전에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종합병원에서 사망하고 있다. 과거에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해서 상당 수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초과 사망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무엇보다 취약지의 의료 붕괴가 가장 우려된다. 그간 우리나라는 취약지 의료의 상당 부분을 값싼 인력을 이용해 감당해왔다. 그런데 공보의와 군의관 등이 새로 배출되지 않을 위기에 처했다”며 “이번 정부의 의료개혁의 목적 중 하나가 의료 취약지의 의료 품질을 높이려 한 것인데 가장 먼저 무너지는 곳이 바로 취약지가 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배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정부가 잘못은 인정하고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게서 이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간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생을 뽑아선 안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도 교육부 장관이 시간을 미뤄 결국 2025학년도 의대생이 늘어났다. 상식적으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한다고 하면 최소한 증원이 많이 된 의대는 의대생을 뽑아선 안된다. 그런데 최근 복지부 장관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3058~5058명 사이로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말 장난이다”라고 꼬집었다.
배 교수는 “필수의료 7대 패키지 역시 뭐 하나 바뀐 것이 없다. 오히려 정부는 그중 50%의 과업이 수행됐다는 보도자료나 내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의료대란과 상관없이 뚜벅뚜벅 보건의료 개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며 “의료계는 특례를 원한 적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특례를 이야기하며 특례를 줘도 말을 안 돌아온다는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민주당에게 큰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민주당은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당론을 단 1mm도 후퇴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정권이 바뀌더라도 하루 아침에 천지가 개벽하듯 2024년 2월로 돌아가자고 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금도 전남의대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지난해 6월 18일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전경.
사직 전공의 “비정상적인 정권이 키운 문제…결코 1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지난해 2월 20일을 전후로 병원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역시 처음부터 사태가 이토록 장기화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서울 빅5병원 사직 전공의 A씨는 “초반에는 사태가 이렇게 오래 갈 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총선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사태가 1년 정도 길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현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기습 발표가 총선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총선이 여당의 완연한 패배로 끝났음에도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상식이 안 통하는 정부라고 느꼈고,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공의들은 총선 직후부터 해당 문제가 해결되려면 대통령이 사퇴하거나 탄핵되는 길밖에 없다는 이야기 하곤 했다.
A씨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태를 이렇게 장기화시킬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비정상적인 의료정책에 정부 관료들이 동참한 것도 문제를 키웠다. 중간에 이성을 찾고 수습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현재는 대통령도 탄핵 위기에 있고 정부 관료들도 나 몰라라 하며 도망갈 궁리나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번 전공의 사직을 ‘의료공백 사태’라고 부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백은 나중에 메워지기 마련이다. 이번 사태는 메울 수 없다. 잘 만든 댐을 정부가 무너뜨렸고, 그로 인해 물이 다 빠져나간 것이다. 그 물을 채우려면 처음부터 댐을 다시 지어야 하기에 당장 물을 다시 채우기란 힘들다”며 “현 사태는 당장 인력으로 공백을 채우면 되는 그런 상황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1년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설명이다.
A씨는 “당장 전공의들 중에 누가 다시 수련병원에 돌아가서 산부인과를 하고, 소아청소년과를 하고, 흉부외과를 하겠나.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에는 ‘바이탈 뽕’이라고 해서 필수의료에 취해 사람을 살리고 싶다, 중환자를 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전공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정신을 차린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전공의들은 이번 의정 사태로 사실상 전공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나라 수련 교육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종용하는 일부 교수들의 모습에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A씨는 “만약 사태가 정말 급변해서 거시적 관점에서 전공의들이 돌아간다고 해도, 전공의들은 절대 필수의료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의료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겠지만, 이것은 모두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현재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222명 가운데 5176명(56.1%)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초음파도 배우고 내시경도 배우면서 외래를 보는 경우가 많고, 요양병원에서 주치의를 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렇게 밖에서 배울 것을 다 배우면 굳이 수련을 받아야하나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배운 것을 토대로 개원하면 되기 때문이다”라며 “일부 자격증을 위한 자격증 취득을 위해 수련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게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들은 저마다의 계획이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후 1년여 동안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의대생 중에는 그래도 희망을 품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본과 4학년인 의대생 B씨는 “공부와 실습은 다 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태가 지속돼 학교에 복귀하지 못하더라도 국시는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해 다른 학년보다 휴학이 쉬웠던 것 같다”면서 “그런데 4월 총선 이후에도 대통령이 정책을 밀고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럼 1년을 쉬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 과학적 근거에 따라 증원 계획이 필요한 의대 정책에 무조건 2000명을 고집하고, 의료계 반발이 심하니까 1500명으로 고치는 등 고무줄 식 정책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B씨는 또 한 가지 아쉬움으로 “젊은 의사들인 학생, 전공의 입장에서 교수님들이나 개원가에서 보다 힘을 보태주었다면 사태가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기성세대 의사들이 현 사태를 외면하고, 의대생들을 회유하는 데 집중하거나 타협하려고 나선 것도 사태 장기화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젊은 의사들은 지속적으로 양질의 수련, 양질의 의학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매도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련 시스템이 아닌 필수의료 ‘바이탈’이 존중받는 방향으로 변화하길 원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조금이라도 의사들이 의사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시스템 변화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희망을 전했다.
대다수의 의대생들은 다소 비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본과 2학년인 C씨는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나라가 의사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일명 ‘바이탈’이라고 하는 과에 대한 동경도 있었는데 오히려 찬밥 신세를 당하고, 소송에 걸리는 등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됐다”며 “이런 나라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한동안 멍해져 비관주의에 빠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C씨는 “앞으로 배우고 의사가 돼야하는 입장에서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지만 허무함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1년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얻어낼 것이 무엇이 있을지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초기에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꾸고,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나 생명을 살리는 의사에 대한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사태가 해결돼 빨리 면허를 취득해 살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밝혔다.
그는 “탄핵이 된다고, 정권이 바뀐다고 문제가 해결될지도 의문이다. 민주당 역시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 등을 추진하면서 의대 증원에 찬성해왔던 이들이다. 의료계의 목소리를 진정성을 갖고 들어줄지 모르겠다”며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일찍부터 해외 진출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의대생들은 매몰 비용을 1년 넘게 썼다. 인생의 계획이 망가지는 손해였다.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 만큼 보상을 바랄 것이다. 전공의 요구안 학생 요구안의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일부는 해결해주고 일부는 점차 들어주겠다는 합의가 돼야 납득을 하고 복귀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그간 정부는 의사를 악마화하고, 내부 갈등을 유발하고, 직역 간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등 온간 지저분한 짓을 해왔다. 그러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복귀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처분이 필요하며, 새 정권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 재발 방지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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