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6.22 07:12최종 업데이트 23.06.2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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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필수 외과수술 붕괴 저지선 역할 수행하는 2차 병원…해법은 '사람'에 대한 투자

[인터뷰] 진주제일병원 정의철 원장, 2차병원복강경외과학회 통해 2차병원 외과의가 필수의료 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위해 노력

진주제일병원 정의철 원장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필수 외과수술을 담당할 외과의 부족으로 외과 응급의료체계는 이미 위기를 넘어 붕괴 상태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2차병원을 운영하는 외과의사, 진주제일병원 정의철 원장이 외과계의 현실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지역에서 필수 외과 수술을 유지하며 2차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의철 원장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외과를 살리기 위해 ‘2차병원외과복강경수술연구회’를 구성해 지역의 2차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외과 수술을 포기하지 않고 지방 환자들의 필수의료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이제는 명실상부 대한외과학회 산하 학회가 된 '대한2차병원복강경외과학회'는 수술실을 떠나는 젊은 의사들이 외과계 필수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역 병‧의원이 필수의료를 포기하지 않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외과에 대한 사명감으로 부친의 뜻을 따라 외과 외길 인생을 걸어온 정의철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외과계 필수의료의 현실을 들어봤다.

외과중심병원 사라지며 일자리 구하지 못한 외과의 개원 혹은 타 진료로 돌아서
 
진주제일병원 전경.

정의철 원장은 아버지 정회교 원장에 이어 2대째 외과를 선택해 지방 중소도시인 진주에서 필수의료 외과 수술을 수행하고 있다.

2021년 대한외과학회로부터 '강소 외과병원'으로 선정된 진주제일병원은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도 외과에 대한 애정과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2차 병원으로서의 사명감으로 40년을 버텨 왔다.

그의 부친은 남들은 다 칼을 놓는다는 시점인 만 58세에 1994년 2월 부산·경남 지역 최초로 복강경 담낭절제술에 성공했다. 정 원장 역시 부산·경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2002년 4월 복강경 구불결장암절제술을 성공하는 등 계속해서 최초의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 원장은 10여년 전인 2009년, 외과계의 위기를 직감하고, 뜻있는 2차병원 외과의들과 힘을 합쳐 2차병원외과복강경수술연구회를 발족했다.

정 원장은 연구회를 발족할 당시에도 이미 외과계는 벼랑 끝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강보험 도입 이후 저수가 정책과 수가 결정 과정에 대한 외과의 대처 실패 그리고 국민이 큰 병원을 선호하는 경향과 기업 대형병원의 등장으로 2차 종합병원의 외과 역할은 하루가 다르게 위축됐다"며 "급기야는 많은 외과 중심 병원들이 사라지거나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진료과로 전환하면서 외과는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만 유지됐고 외과 의사의 일자리가 사라져 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인이 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나갈 즈음에는 이미 많은 선 후배가 수련과정에서 배운 다양한 외과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주로 항문수술을 하는 외과를 개업하거나 건강검진, 통증, 미용, 성형 등 다른 진료과목으로 돌아서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차병원복강경학회 통해 외과의에게 외과계 필수의료 술기 제공

그러던 중 정 원장은 2008년 일본 후지다대학병원 상부위장관수술의 대가인 우야마, 가나야 교수가 진주제일병원에서 심포지엄을 하는 자리에서 그와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외과 수술에 매진하던 경북 안동병원의 정봉수라는 외과의를 만나게 됐다.

그는 "정봉수 원장이 나를 찾아와 죽어가는 2차병원 외과를 되살리기 위한 외과의 모임을 제안하게 되면서 역사는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병원외과복강경수술연구회는 2009년 10월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첫 발기모임을 가지게 되면서 시작됐다.

연구회는 한해 3~4차례 복강경 충수절제술 등 외과계 필수의료에 대한 심포지엄과 학술대회, 라이브 시연을 통해 정보에 목마른 2차병원 외과의들과 대학병원 수련의에게 새로운 복강경 술기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2020년 대한2차병원복강경학회로 재탄생한 연구회는 바쁜 일상으로 제대로 된 학술대회 활동을 할 수 없는 2차병원 외과의들을 위한 학회로서 기존 연구회가 하던 역할에 더해 기존 대학병원에서는 습득의 기회가 부족한 술기와 위, 대장내시경 및 초음파 등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펠로우십도 운영하고 있다.

미래 보이지 않는 외과, 정부 정책은 3차 병원 중심…인력 블랙홀에 
 
정의철 원장의 수술 장면.

정의철 원장은 최근 필수의료 붕괴 위기에 대해 "저수가와 외과수술의 높은 사고에 대한 우려로 제대로 된 응급수술을 실행할 수 있는 지역병원은 더 축소됐고 필수 외과수술을 담당할 외과의는 부족한 상태다. 현 외과 응급의료체계는 이미 위기를 넘어 붕괴된 상태라 판단된다"고 냉철하게 평가했다.

정 원장은 "MZ세대의 급격한 사고방식의 변화로 외과전공의 지원과 필수 외과수술을 담당할 분야인 상‧하부 소화기, 간담도 분야의 전임의 지원이 급격히 줄면서 현재로서는 전혀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지난해부터 필수의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각종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만들고 있지만 외과계는 거기에서마저 소외됐다.

그는 "정부 필수의료 대책에 외과는 초기 논의에서조차 빠졌다. 정부는 3차 병원만 제대로 지원하면 마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3차 병원 중심의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현재 정부 정책은 2차 병원에 대한 지원은커녕 2차 병원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 원장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수만 더 늘리고 수가를 올리고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면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블랙홀처럼 인원을 빨아들이게 된다. 그러면 그나마 겨우 버티고 있던 지역응급의료센터의 붕괴라는 새로운 문제가 야기될 텐데 이해가 안 된다"며 "지나친 전문화 및 세분화로 인한 비효율성으로 이미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한 상태라서 이러한 대책은 정말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2차병원이 필수의료 담당하도록…충분한 보상·워라밸 보장 위한 재원 투입해야

정의철 원장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려면 2차병원이 지역 외과계 필수의료를 담당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원장은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수립한 후에 합리적인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불편함 없는 의료체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서비스 제공 의료기관 역시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장기적인 계획 수립이나 방향을 설정하여 합리적인 운영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단순히 3차 병원 중심의 필수의료 대책은 지역 응급의료체계의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2차병원의 자원과 의료서비스를 이용해도 충분한 환자들이 3차병원에 너무 많이 몰리고 의료인력, 병상부족이라는 이유로 정작 3차의료기관 진료가 필요한 환자의 접근은 차단 되고 있다”며 “중증환자 진료, 연구에 매진할 3차 대형병원과 지역의 필수의료를 담당할 2차병원의 전달체계에 따른 역할 분담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2차병원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충분한 보상과 워라밸 보장을 통해 의료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재원 투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가 현실화 없이는 백약이 무효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동안 필수의료 종사자들은 저수가 의료정책으로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며 수입을 얻고 의사로서 사명감을 중시하며 받아들이고 살았지만, 이제는 워라밸을 더 중시하는 세대로 바뀌어 더 이상은 이렇게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또 정 원장은 "MZ 세대들은 외과 수술을 두려워하고 있다. 모든 잘못을 외과의에게 돌리고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감당하라면 아무도 수술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부분은 국가에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현장에서는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료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게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고생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대가와 보상이 있어야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도 줄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동료 의사를 향해서도 동료 의사들을 향해 "의사의 길을 택한 이상 의사로서의 사명감도 가졌으면 한다. 모든 사람들이 쉬운 길만 택하면 필수의료는 누가 감당하겠느냐"고 함께 필수의료 살리기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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