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사들이 ‘강한 투쟁’을 외쳐가면서까지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재인 케어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로 이를 반대하면 자칫 정권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이런 부담을 뒤로 하고 강한 투쟁을 외치던 최대집 후보를 신임 대한의사협회장으로 뽑은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들은 지난해 12월 10일에 이어 3월 18일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런 의사들의 열망은 제40대 의협회장 선거로 이어졌다. 선거권자의 29.67%(6392명)의 의사들은 23일 ‘오직 문재인 케어를 저지’하기 위해 출마한 최대집 후보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최 당선자는 문재인 케어 저지를 위해 선출된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투쟁위원장이기도 하다. 비대위는 9차례에 걸친 정부와의 의정실무협의체에서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문재인 케어를 강행한다고 반발했다. 급기야 비대위는 지난 6일 협상단 총사퇴를 하고 강한 투쟁을 예고했다.
최 당선자의 임기는 5월 1일부터다. 하지만 그는 보건복지부에 4월 1일자 예비급여 고시를 철회하지 않으면 4월 중에도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당선자는 “전국을 돌아보니 대학병원부터 병원, 의원에 걸쳐 문재인 케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라며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팽배해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2015년 63.4%에서 70%으로 올리는 것을 말한다. 건강보험 보장성이란 국민의 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비율을 말한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위해 예산을 투입하지만 보장률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로 '비급여'에 있다고 봤다. 따라서 복지부는 2022년까지 5년간 30조 6000억원을 들여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 3000여개를 모두 급여로 편입하는 대신 적정수가를 인상해주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적정수가’를 보전해주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정부를 믿지 못한다며 문재인 케어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최대집 의협회장 선출을 계기로 의협 비대위가 밝혔던 문재인 케어 반대 이유를 다시 한번 짚어봤다. 의료계의 주장을 보면 건강보험 재정 증가 없이 문재인 케어 실행 불가, 보장성과 관계없는 본인부담률 80%의 예비급여 고시 반대, 문재인 케어 시행 전에 적정수가 보상 등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①건강보험 재정 증가 없이 문재인 케어 실행 불가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매년 보험료율 인상을 평균 3.2%정도 하면 문재인 케어에 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을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2018년 건보료 인상 수치는 2.04%에 불과했고 별다른 인상안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에서 지급해야 할 국고지원금도 부족한 상태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국고지원금 일반회계 예산은 원래 예산안 5조2001억원에서 2200억원 감액됐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하는 국고지원금 기준인 건보료 수입의 14.0%보다 4.2%p 적었다. 금액으로 보면 2조2739억원 적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 재정의 국고 지원 규모는 일반회계 14%와 건강증진기금 6% 등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예상 수입액을 낮게 책정하고, 사후에도 이를 정산하지 않는 방법으로 국고지원을 축소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국고지원금의 부족액은 국고 5조5720억원과 기금 9조986억원으로 전체 14조 670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 2019년부터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20조원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되고, 2026년이면 누적적립금이 바닥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건보 재정이 최대 50조원에서 100조원까지 필요하다는 일부 연구도 나오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보험료율 인상은 국민들의 저항이 따르는 만큼 앞으로의 인상도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라며 “재정 마련이 전제되지 않은 문재인 케어는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②보장성과 관계없는 본인부담률 80% 예비급여 고시 반대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에서 나온 ‘예비급여’라는 항목을 반대하고 있다. 예비급여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서 ‘선별급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예비급여는 치료에는 꼭 필요하지만 비용이 부담되는 비급여 항목을 본인부담률 50~90%의 급여로 뒀다가 3~5년 이후 급여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의료계는 예비급여 항목에 대해 보장성 강화가 아닌 비급여 통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비대위는 “환자는 예비급여로 인해 진료비 전체의 본인부담률의 최대 90%까지 부담해야 한다”라며 “정부는 보장성을 강화한다면서 예비급여가 나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어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을 낮춰야 한다”라며 "예비급여는 비급여 통제 수단이자 무늬만 비급여"라고 했다.
특히 비대위는 13일 본인부담률 80%의 예비급여를 포함한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고시를 강행한 정부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10일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이어 3월 18일 의사 1000여명이 참석한 전국의사 대표자회의를 통해 투쟁의 불씨를 되살려놓은 계기가 됐다.
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상복부 초음파는 일반적으로 상복부 질환이 의심될 경우 검사하는 일반초음파와 간경변증, 간암, 간이식 등 중증환자 상태를 검사하는 정밀초음파로 구분된다. 일반초음파는 의사의 판단 하에 상복부 질환자 또는 의심 증상이 발생해 검사가 필요한 경우 보험이 적용된다. 정밀초음파는 만성간염, 간경변증 등 중증질환자에 대해 보험이 적용된다.
또한 새로운 증상이 있거나 증상 변화가 없더라도 경과관찰이 필요한 고위험군 환자의 추가 검사에도 보험이 적용된다. 복지부는 “초음파 검사 이후 특별한 증상 변화나 이상이 없는데 추가 검사를 하는 경우는 본인부담률이 높게 적용(80%)된다”라며 “4대 중증질환 초음파 평균 횟수(1.07회)를 고려할 때 이러한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 과정에서 상복부초음파 비급여 철폐와 급여기준 외 예비급여 80% 적용고시 예고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라며 “의료계가 예비급여를 반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의료계를 기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정부는 예비급여 강행과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을 중단하고, 상복부초음파 예비급여 80% 고시를 철회하는 등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협상 태도를 보여야 한다”라며 “정부가 신뢰를 저버린다면 의사들에게 남은 방법은 오직 투쟁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③문재인 케어 시행 전에 적정수가 보상 이뤄져야
의료계의 핵심 주장은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려면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것이다. 의료계는 대한민국 의료가 제대로 나아가려면 적정부담, 적정급여, 적정수가의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연세대 산학협력단에서 진행한 의료수가 원가보전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의원의 원가 보전율은 62.2%, 병원 66.6%, 종합병원 75.2%, 상급종합병원이 84.2% 등으로 나타났다. 전체 의료기관의 추정 원가보전율 평균은 69.6%에 불과했다.
비대위는 “의료기관은 그동안 저수가 때문에 비급여로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는 일이 많았다”라며 “건강보험 보장성이 아니라 저수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의료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낮으며 OECD평균 이상의 적정 수가, 적정 급여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비대위는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료수가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며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고 비정상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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