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2.17 08:51최종 업데이트 25.02.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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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필수의료 의사 과실 판결 "이번 기회에 사법부 판단 기준 바꿔야"

미국 'EMTALA' 처럼 현장 의사들이 기준 세워야 적절…판사 '최선의 진료했나' 판단에서 '가이드라인 지켰나'로 변해야

사진=대법원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데이트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응급수술을 받다 사망한 사건에서 의사가 함께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현장 의료진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경막외 뇌출혈을 확인한 의료진이 내경정맥 중심정맥관 삽입 시술을 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사과실 판결이 줄곧 이어지면서, 일각에선 이번 기회에 의료 사고 시 의사 과실 여부를 전적으로 사법부에 맞기고 있는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17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지난 2017년 10월 6일 데이트 폭력 과정에서 경막외출혈 등 상해를 입은 피해자 A씨가 모 대학병원에 이송돼 긴급 수술을 받은 사건으로, A씨는 수술 중 목 안에 있는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동맥에 1~2mm 정도 관통상이 발생해 과다 출혈로 숨졌다.

1심 재판부는 “해당 의사가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상태로 삽입 시술을 하면서 관통상을 야기한 과실이 있어 보인다. 병원도 삽입시술에 대해 가족에게 설명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이 사건의 삽입시술은 흔히 시행되는 시술이지만 합병증이 보고돼 왔다. 이를 시행하는 의사로서는 이런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료과실 인정한 사법부에 현장 의사들은 '의아함' 투성이

그러나 실제 의료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사법부 판결에 의아함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실제 사망한 환자의 사망과 의료진의 시술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이경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해부학적으로 내경정맥과 내경동맥은 같이 주행하므로, 내경정맥 중심정맥관 삽입 시술 시에 내경동맥이 주사침에 관통되거나 내경동맥으로 도관이 삽입되기도 한다. 관통상은 해당 시술 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며, 대부분 주사침이나 도관 제거 후, 해당 부위 직접 압박으로 지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증가하고 있던 경막외 뇌출혈 혈종에 의해 뇌간이 압박되며 심정지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의학적 추론"이라며 "중심정맥관 삽입 시술 시 발생한 내경동맥 1~2㎜ 가량의 관통이 과연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외상성 경막외 뇌출혈과 과실 비율을 나눌 만큼 중대한 과실인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의사들이 가장 우려를 나태내는 부분은 중심정맥관 삽입 시술 시 관통상이 흔히 발생하는 부작용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법부 판단이 앞으로 환자 응급 처치 과정에서 의료진의 적극적인 시술을 방해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소아응급을 전문으로 하는 한 전문의는 "중심정맥관 삽입 과정에서 관통은 꽤 자주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그러나 법원이 이에 대한 의사의 의료과실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해당 시술을 많이 하는 과들은 모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앞으로 동맥 관통 등 부작용이 조금이라도 있는 시술은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판례가 이런식이라면 정맥관 삽입은 위험이 있으니 하지 말아야 되는 술기가 돼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은 EMTALA 가이드만 지키면 민·형사 책임 면제 

현장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의료 사고에 대해 의사가 과실 책임을 모두 짊어지는 형태가 아닌, 새로운 법률적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일례로 미국 EMTALA(연방 응급진료 및 분만법)은 1980년대부터 여러 응급의료 관련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각 진료별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놨다. 

즉, 매번 사법부에서 의료 감정의사 개인의 의견과 판사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만 확인하면 되는 셈이다. 

실제로 미국 메모리얼 병원(Burton v. Memorial Hospital) 사례를 보면, EMTALA 가이드라인의 중요성을 옅볼 수 있다. 

2015년 30대 여성이 복통을 호소하며 메모리얼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응급실 의사는 EMTALA에서 정한 안정화 치료(Stabilization Requirement)를 차례로 수행했다. 

혈압과 혈액 수치 검사와 복부 CT 촬영 등이 시행됐고 최종적으로 의사는 위장 장애로 판단하고 통증 조절만 시행하고 퇴원 조치했다. 

그러나 환자가 몇 시간 후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했고 유족은 병원과 의료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의료진이 EMTALA 치료 의무를 준수했고 응급실 프로토콜을 적절히 따랐다고 인정했다. EMTALA에 따르면 '환자가 임상적으로 안정(Stable)한 상태로 퇴원했는가'가 중요한데, 퇴원시 객관적인 검사 수치가 정상 범위였고 응급실 의사의 기록도 명확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판결됐다. 

선별 검사 과정에서 특이한 징후가 확인되지 않고 현재 임상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판단된다면 추후 예측하지 못한 합병증이 발생하더라도 의사가 형사, 민사적 배상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대한외상학회 조항주 이사장은 "정맥관 삽입 과정에서 사람 마다 혈관 위치가 상이하기 때문에 충분히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판결이 반복될 경우 1%라도 위험성이 있는 술기는 기피하게 되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며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지켰다면 어느 정도 민·형사 소송 과정에서 정상 참작을 해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적 판단 기준 차이, 한국 '최선의 진료 했는가' VS 미국 '가이드라인 준수 했나'

미국 프로비던스 메디컬 센터(Howell v. Providence Medical Center) 사례 역시 의료사고 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일례다. 의료진은 심한 복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한 40대 남성에 대해 EMTLALA 가이드라인에 따라 심전도, 혈액 검사, 흉부 엑스레이를 시행했고 급성 심근경색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통증 조절 후 귀가 조치했다. 

이후 환자는 그날 저녁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법원은 "EMTALA 가이드라인에 따라 응급 선별검사를 시행했다. 선별 검사를 통해 모든 질환을 100% 정확히 진단할 의무까지는 부과하지 않는다"며 병원과 의사에 대해 형사, 민사적 배상 책임을 면제했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한국은 의료 과실에 대한 처벌 기준이 미국에 비해 더 엄격하다. '최선의 진료를 했는가'가 법적 판단의 핵심 요소"라며 "단순한 진단 오류도 '좀 더 철저한 검사와 신중한 판단을 했어야 한다'는 논리로 처벌이 가능하다. 응급환자 전원 시에도, 환자의 사망과 연결되면 형사 처벌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미국은 EMTALA에서 정한 '응급 선별검사 및 적절한 조치를 했는가'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검사를 시행했고 적절한 조치를 했으며 이에 대한 기록만 남아 있다면 면책이 가능하다. 진료 거부만 아니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형민 회장은 "미국은 이미 80년대부터 수만가지의 법적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EMTALA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놨다. 법원에서 의료사고 시 쟁점은 '주의 의무' 준수 여부다. 주의 의무 기준은 판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사법적 판단이 가능하고 의료인들을 법적 위험성에서 구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의료라는 것이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내시경을 하다가도 환자가 사망할 수 있고 맹장 수술을 하다가도 죽는다. 그것이 의료의 본질이다. 이런 의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판결이 계속 이뤄지면 결국 위험성이 높은 과는 점차 지원자가 줄어들 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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