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에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전혀 과도하지 않다는 주장이 최근 한 일간지를 통해 보도됐다. 보건복지부 용역 과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수행한 것인데 보고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전에 보고서를 입수한 일간지는 연간 형사처벌이 34건밖에 안 된다는 연구 결과는 “과도한 의료 소송이 필수과 기피 현상을 부추긴다”는 의료계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마치 의사들이 자신들을 위한 과장된 주장을 해왔던 것으로 보도했다.
정부 용역 액면 그대로 ‘34건’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형사처벌 건수
연구 조사의 제약상, 그리고 보고서 작성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연간 34명의 의사가 부정적 의료결과에 의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간단히 국제 비교를 해봐도 활동 의사 10만 명 정도 규모에서 연간 34명의 형사처벌을 확인한 것은 우리나라가 의료로 인한 형사처벌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비록 시간이 경과된 자료나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108년간 마취 의사가 자리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의료사고로 의사 스스로 유죄임을 선언한 것이 유일한 단 1건의 사례로 온타리오주에서 의료를 대상으로 한 형사처벌은 더 이상 확인할 수 없다.
공공의료를 옹호하는 사례로써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영연방국가나 북유럽 국가에서도 의사 형사처벌 사례는 자료 탐색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실제 처벌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 자료인 영국 사법부가 출간한 자료에 의하면, 6년간 4명의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전부다.
우리나라가 영국, 미국과 달리 대륙법 체계의 법률 체계이기에 다르다는 학술적 변명도 실제 독일이나 프랑스를 보면 그 사정은 다르다. 독일의 실제 형사처벌 사례를 보면 연간 0~2명 정도이고, 프랑스가 가장 까다롭다고 하는데 연평균 10~13건의 형사처벌 기록이 있다. 이는 월평균 1건 정도인데 여기에는 폭력, 강간, 성추행 등 일반 형사 범죄가 모두 포함돼 있고 실제 순수 의료를 대상으로 하는 형사 처벌 건수는 절반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논문으로 발표되어 국제적으로 인용되며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활동 의사 수로 환산하면 프랑스 영국 독일보다 최대 60배 이상 많아
의료를 대상으로 하는 형사처벌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많다는 프랑스에서조차 실제 의료가 대상인 형사처벌 건수는 연간 5~6건 정도인데, 그나마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강간과 폭력 혐의로 7년, 10년의 실형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의 34건은 활동 의사 10만 명이 대상인데, 프랑스 의사 수는 최소 20만 명 이상이다.
의사 수를 고려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우리나라와 프랑스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형사처벌 건수가 프랑스의 10배는 거뜬히 넘는다. 영국과 독일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보다 최소 60배 이상의 형사처벌 규모를 기록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최고의 형사 처벌 행태를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최악의 의료나 최저의 의사 역량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평소에는 세계 최고의 의료제도와 의료라고 자화자찬하는 것이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선진국에서 의료를 대상으로 하는 재판은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형사법이 아닌 ‘불법 행위법(Tort Law)’으로 처리한다. 무엇보다 사전 중재를 우선으로 하고, 매우 제한한 경우에서 민사로 다루는 것이 사법적 관습(practice)이다.
불가항력 사고나 의료에 대한 배상체계 모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처리하며 담당한다. 우리나라의 배상제도는 아직도 미비해 형사소송으로 의사를 압박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들기는 하는데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 사법제도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법학 교육의 형태가 국제적인 경향과 다른 것인지 아니면 관행의 수준(standards)이 다른 것인지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다. 법학 교육이나 법조계의 발전을 위해 국제적 제도와 시스템을 비교해 보아도 분명하게 드러날 우리나라의 사법 관행은 의사에게는 도저히 설득하기가 불가능하다.
의료 불확실성 몰이해로 가해자로 내몰면 누가 환자 곁을 지키나?
형사 처벌에 관한 일간지의 보도 내용을 보면, 의료 소송을 제기한 환자·유가족은 회복하기 어려운 큰 피해를 입었다고 기술돼 있다. 의료 소송의 당사자인 환자 192명 가운데 74명(38.5%)은 사망 사건이고, 116명(60.4%)은 신체적 손상을 입었다고 기술하여 마치 의사가 가해자인 인상을 주는 듯한 간접적 표현을 했다. 피해를 입은 분과 가족들에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나 의사를 가해자처럼 묘사하는 일간지는 도대체 현대 의료의 불확실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는지도 궁금하다. 모든 의료행위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건널목을 횡단할 때 다른 건널목과 달리 사망 사고율이 10배가 넘는다면 과연 그 건널목을 꼭 건너야 할지는 잘 생각해 볼 문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무려 10~60배 이상 형사처벌 받을 확률이 있다면 의료로 전과자가 되고 싶은 의사가 누가 있을지 궁금하다. 의사 출신 변호사의 표현대로 연간 34건이 대수롭지 않다는 주장은 더욱 놀랍다. 의사 출신이나 의사 활동이나 의료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달라 보이는 주장이다.
이번 복지부 주도의 형사처벌 연구과제는 그간 우리나라의 형사처벌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의료계가 평소 형사처벌이 과도하다는 주장을 정확하게 잘 보여준 중요한 보고서로 보인다. 있는 그대로 빠른 시일 내에 공개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형사처벌 국가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과도한 과장된 주장이라는 표현은 자체적 연구에서 형사처벌 관련 자료 접근의 한계로 경찰 검거 이후의 전개 상황에 대한 접근 제한으로 형사 기소율에 대한 추정자료였다. 지금도 여전히 정확한 자료 획득은 한계가 있고 매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누가 연구를 해도 추정의 요소가 많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현업에 있는 의사 검거 건수 연간 700건 육박 의료 사막화 가속 우려
그러나 최근 국회의원실에 제출된 경찰의 의사 검거 건수는 추정이 아닌 확실한 자료인데 그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려 연간 700건이 넘는 검거가 의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의료를 이유로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우리나라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어 보인다. 현실로 닥친 ‘경찰 조사’가 어려서부터 모범생이어야 가능한 의대 입학과 어려운 학업과 수련이 전부인 의사에게 주는 충격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도 의사로서 회복할 수 없는 피해와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이대 목동 사건에서 몇 달씩 구치소에 갇혔던 의료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필수 의료 기피가 과도한 형사처벌이 아니라는 일간지의 보도 내용을 접하면서 사법에 의한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맞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환자단체의 주장도 34건의 형사처벌이 별것 아니라는 주장과 결국 같은 맥락이다. 무분별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은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의료 붕괴 현상에 대한 불감증이다.
<참고자료>
MaximeFaisant et al.Twenty-five years of French jurisprudence in criminal medical liability.
Medicine, Science and the Law 2018, Vol. 58(1) 39–46
Gross negligence manslaughter in healthcare, The report of a rapid policy review, June 2018
rapport-annuel-MACSF-2023.pdf
MACSF(Mutuelledu Corps Sanitaire Franç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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