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첫 회에는 과거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우리나라도 가족주치의라는 개념이 조금씩 확산되어 가고 있지만 북미는 이미 가정의 (family doctor) 제도가 확립이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의학과는 1차 진료 (primary care)를 제공함으로써 개인 및 가족 구성원들의 건강 유지 및 질병 치료의 시작점 역할을 하고 있다.
언뜻 보면 특별한 전공없이 일반의 (General Physician)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미국의 가정의학과 전공의 과정은 3년으로서 일반 내과(General Internal Medicine)의 수련 기간과 다르지 않다. 가정의학과를 전공하고 2년 간의 전임의(Fellow) 과정도 할 수 있다.
노인의학이나 스포츠 의학 등을 세부 전문과목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보험에 가입하거나 정부 보험 (Medicaid & Medicare)에 가입하게 되면 가정의를 반드시 지정해야만 한다.
다만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곳 근처에서 본인의 보험을 받아주는 가정의로 정해야만 한다.
캐나다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10개의 주정부가 각기 조금 다른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 국민 의료 혜택이라는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가정의 선택도 자유롭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국한될 필요가 없으며 내 가정의가 아니더라도 워크인 클리닉 (Walk-in Clinic) 등에서 받을 수 있다.
가정의로 지정한다는 것은 어떤 법적인 효력을 갖는 계약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는 반드시 그 의사만 고집할 필요가 없으며 반대로 의사도 그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단 응급인 경우는 예외).
그렇기 때문에 계약서는 아니지만 등록 신청서 정도는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환자가 의사의 치료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예약을 무단으로 계속 어긴다거나 큰 소란을 피우거나 등등 다른 환자들의 진료에 방해를 주고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준다고 판단하면 의사는 그 환자를 등록에서 빼는 경우도 있다.
이를 Dismissal 이라고 부른다.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아직 이런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밖에는 없었다.
가정의학과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개인과 오랜 동안 Patient-Physician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간다는 뜻이다.
위의 경우와는 달리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대부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간다.
자꾸 보다보면 서로 친근감이 들고 또한 매 진료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가정의학과 의사로만 가지는 크나큰 특권이다.
가정의의 상심
하지만 이면에는 애로점도 존재한다.
토요일마다 내원하는 50 대 후반의 서양인 여자 환자가 있었다. 젊었을 때 흡연력도 있고, 관상동맥 질환으로 CABG도 받았고, 자궁내막증으로 수술도 했었다.
혈압이 높았으나 이미 네 가지 약제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비만도가 높아서 혈압 측정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환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마음이 쓰여지는 환자였다. 내원할 때마다 자신의 과거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몇 번 결혼을 했고 자녀는 몇 명이고 다들 어디에 살고 등등. 주말에 병원을 찾았기 때문에 가끔씩 우리집 큰 애도 본 적이 있고 우리집 남매의 이름을 외울 정도였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잊지않고 카드도 써주던 환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Walk-in Clinic에 가서 무릎 관절염 약을 처방받았는데 그 약에 부작용이 생긴 뒤에 응급실을 찾게 되었고 결국 급성 신부전으로 2주 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환자가 걱정된 나머지 병문안도 갔었고 Hospitalist (내원 환자만 진료하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치료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일 이후 그 환자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고 혈압은 항상 높았으며 잦은 응급실 출입으로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반복한 지 6개월이 지나 두통으로 응급실을 찾아 입원을 하였고 3일이 지나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한채 사망하게 되었다.
응급실에 가거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반드시 나에게 전화로 알려주고 퇴원하면 그 다음 날로 찾아와 처방약이 바뀌었는 지 확인하곤 했다.
이를 Medication Reconcillation이라고 하는데 환자의 처방약이 맞는 지 대조하는 작업으로 입원으로 인해 약물이 바뀌게 되면 가정의에게 통보를 해주고 같은 약으로 꾸준히 치료하도록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렇게 가까이 지내던 환자가 세상을 뜨게되면 나는 말할 수 없는 상심에 잠긴다.
이는 오직 그 환자를 오랫동안 치료하고 함께 해왔던 가정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잠시 잠깐 환자를 치료했던 타과 전문의들은 모를 수 있다. 크나큰 상심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더 잘 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큰 후회를 하게 만들고, 나의 진료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 본다. 내가 놓친 것은 없었는지, 내가 잘못 준 약은 없는 지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그 환자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도 생긴다. 항상 나의 안부를 물어봐 주고 우리집 아이들 잘 크는 지 일일이 이름을 말해가면 물어봐 주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상심에 오래 잠기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후회도 그 환자가 나에게 남겨주고 간 일종의 선물이며 더 공부하고 더 진심으로 환자에게 다가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환자는 나에게 'the one' 이 되어 나를 한층 더 채찍질하게 만든다.
의사도 사람이다.
죽음 앞에 초연하려 노력하지만 뒤돌아서면 누구보다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한다.
그렇지만 그 의사를 찾아오는 다른 환자들에대한 책임감 때문에 오랫동안 슬퍼할 수 만은 없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진료를 해야 하고 웃으며 다른 이들을 맞아야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떠난 환자를 잊을 수 없어 항상 마음 한 곳에 담아두고 평생 죄책감아닌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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