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2.16 10:30최종 업데이트 22.02.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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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성 기능성 소화불량증: '레트로' 삼환계 항우울제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칼럼] 이태희 순천향대서울병원·홍지택 이대목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대한소화기기능학회 소화불량증연구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대한소화기기능학회) 릴레이 칼럼 

메디게이트뉴스는 반복적인 소화기 증상을 나타내지만 객관적 검사에는 이상이 없는 '기능성 위장관 질환'에 대해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전문가들의 '릴레이 칼럼 및 희귀질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기능성소화불량증, 과민성장증후군, 기능성변비, 위식도역류질환과 같은 기능성 위장관 질환은 흔히 발생하지만 잘 낫지 않아 환자들의 삶의 질을 매우 나쁘게 만듭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다양한 기능성 위장관 질환에 대해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질환 정보 및 최신 연구내용을 다룰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①환자도 의사도 답답하고 괴로운 병, 기능성 위장관 질환
②과민성장증후군 환자의 식이·생활습관 조언
③이해가 필요한 위식도역류질환의 유지요법
④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의 원인
⑤소화불량과 역류 증상 환자에서 올바른 식이요법
⑥내시경으로 치료하는 소화기 기능성 질환
⑦과민성장증후군 환자의 궁금증 해결을 위한 Q&A
⑧만성 변비, 그것이 알고 싶다
⑨기능성 위장관 증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정신심리치료로 위장증상 조절
⑩난치성 기능성소화불량증: 삼환계 항우울제와 레트로

[메디게이트뉴스] 어느 날 외래에 67세 여성 환자가 심한 명치통으로 방문했다. 환자는 수년 전부터 개인 의원에서 위염, 역류성식도염 진단으로 약물 치료를 받아왔는데,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지냈다고 했다. 한 달 전 설사 및 복통 증상을 보여 장염 진단하에 치료받고 장염 증상은 호전되었으나 이후 명치통 증상이 더 심해졌다. 이후 응급실을 수차례 방문하다가 필자의 외래 진료실을 찾았을 때는 10단계 통증 평가 척도에서 9-10점으로 매우 심한 명치통이 하루 종일 지속되는 상태였다. 매운 음식은 전혀 입에도 댈 수 없고 오심 증상을 동반하였으며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는 조기만복감과 식사 후에 배가 불러 답답한 식후포만감 증상도 동반하였다. 자세히 물어보니 6개월 동안 식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체중이 6kg이나 빠졌다고 했다.

이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다양한 종류의 위산분비억제제와 위장관운동촉진제 등으로 치료받았는데 여전히 증상 호전은 없고 치료의 만족도는 낮아, 환자의 삶의 질은 매우 떨어진 상태였다. 내시경과 복부 CT 검사에서는 예상대로 특이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고, 고형식을 이용한 위배출 검사에서 위배출능의 감소와 기저부 이완 장애 소견을 보였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이 환자는 댜양한 종류의 소화기약제 처방에도 호전되지 않는 난치성 기능성소화불량증으로 진단됐다.

의사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때가 바로 통상의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만나는 경우다. 과연 어떻게 하면 명치통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의 전문가들이 이 환자처럼 이미 여러 소화기약에도 반응이 없는 난치성 환자를 의뢰 받는다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항우울제 처방이다(그림1). 여러가지 항우울제가 있지만 이렇게 복통을 심하게 호소하는 경우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삼환계 항우울제인 아미트립틸린으로, 적절한 환자에게 잘 쓰면 명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약이다. 필자 역시 이 환자에게 아미트립틸린 5㎎을 처방했고 다행히 환자는 증상이 매우 호전돼 일상생활로 건강하게 복귀했다. 현재까지 수 년째 외래에서 위산분비억제제와 아미트립틸린을 처방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제를  소화불량증에 쓴다니 조금 황당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텐데 환자들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특히 약의 분류가 '항우울제'라고 돼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더 큰 것 같다. 사실 약이 개발되던 당시의 적응증이 추후에 새로운 기전과 효과가 밝혀지면서 다른 질환에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미트립틸린도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제약회사 머크(북미 외 지역 MSD)에서 정신분열증 치료 목적으로 처음 개발됐지만, 당시 연구원이었던 프랭크(Frank)가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후 임상 연구에서 항우울증 효과가 확인돼 196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우울증 치료제로 승인됐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세월이 흐르면서 삼환계 항우울제보다 부작용이 더 적은 새로운 항우울제(SSRI, SNRI)가 등장하면서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듯했다. 2021년 네덜란드 전국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 중 누구도 우울증 환자의 약물치료에서 삼환계 항우울제를 1차 치료제로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입마름, 졸림 등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 할 수 있어서 아무래도 의사들이 삼환계 항우울제보다는 새로 개발된 약을 더 사용하게 됐다. 잊혀지는 것 같았던 아미트립틸린이 최근 통증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신분열증에서 시작했지만 우울증을 거쳐 기능성소화불량증이나 과민성장증후군, 또는 다른 만성통증증후군까지 그 적응증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항우울제라고 부르기보다는 '신경조절제'라는 새로운 용어로 사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림1. 소화불량증의 전통적 기전에 따른 치료 약제 종류. 그림 김용성

이렇게 항우울증 약제였던 아미트립틸린이 난치성 소화불량증에 사용되는 이유가 뭘까? 

가장 먼저 삼환계 항우울제의 기능성 소화불량증에 대한 효과를 연구한 임상연구들을 들 수 있다. 이런 연구들을 모아서 체계적 분석을 해보면 삼환계 항우울제는 위약에 비해 난치성 기능성소화불량증 환자의 증상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개선했다고 보고했다(RR = 0.78; 95% CI = 0.64-0.93, 그림 2).

여러 연구에서 계산해보면 삼환계 항우울제로 7명의 소화불량증 환자를 치료하면 최소한 1명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NNT=7명). 난치성 기능성소화불량증에는 조기만복감이나 식후포만감이 주 증상인 식후고통증후군(PDS)과 상복부통증이 주 증상인 상복부통증증후군(EPS)의 두 아형이 있다. Talley 등은 삼환계 항우울제가 식후고통증후군보다 상복부통증증후군 환자들에게서 더 효과적임을 보고했다. 또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삼환계 항우울제 사용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은 위약에 비해 높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RR = 1.56, 95% CI = 0.88-2.76, p= 0.13, 그림 2). 이는 아마도 우울증 치료용량에 비해 아주 소량으로 치료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2. 난치성 기능성소화불량증에서 삼환계 항우울제와 위약 비교 연구 메타분석 <2020 기능성소화불량증 가이드라인>

두번째로는 약리학적 근거를 들 수 있다. 항우울제는 원래 심리 증상, 특히 불안과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제다. 이런 심리 증상들이 기능성소화불량증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고 난치성환자들에게서는 그 영향이 매우 크다. 추가로 항우울제는 중추성 진통 작용을 보이기도 하므로 상복부통증이 주 증상인 환자에게 유용할 수 있다. 또한 항우울제는 정서적 각성을 감소시키고 수면 회복에 도움을 주는데, 수면 박탈은 소화불량증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근거들을 바탕으로 대한소화기기능학회가 2020년에 발표한 '기능성소화불량증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삼환계 항우울제는 산분비억제제, 위장관 운동촉진제 등 기존의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권고했다(표1).
 

우울증 치료용량에 비해 소화불량증 치료에는 항우울제를 아주 소량 사용하지만 여전히 부작용에 주의해야 한다. 삼환계 항우울제의 주요 부작용은 항콜린성 작용으로 인한 것으로, 체위성 저혈압, 변비, 입마름, 전립선 비대 환자의 뇨저류, 안압 상승(녹내장) 등이 있다. 이외에도 졸음으로 인한 낙상이나 세로토닌 증후군으로 인한 심전도의 이상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난치성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에서 아미트립틸린 처방 시 이런 부작용에 대한 환자 교육을 하고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mRNA 백신,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 개발, 암 치료를 위한 면역항암제가 각광 받는 현대에 1950년대 개발돼 이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도 외면(?)받는 삼환계 항우울제인 아미트립틸린이 난치성 기능소화불량증의 중요한 치료약물로 자리 잡은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는데 요새 유행하는 것이 레트로 패션이라고 한다. 레트로는 Retrospect(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단어의 줄임말로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도 돌아가려는 흐름이다. 과거에 개발돼 잊혀졌지만 새로운 효능으로 다시 주목받는 아미트립틸린 같은 약이 바로 레트로 패션과 같은 약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환자분들 중에서는 진료 후 약국에 갔더니 '항우울제'라고 표기된 약봉투를 받은 적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최신 지식으로 무장한 의사로부터 트렌디한 치료제를 처방받은 것이니 놀라지 마시길! 

신경조절제인 아미트립틸린 처방이 난치성 기능성소화불량증으로 고통가운데 실의에 빠진 환자와 무기력함을 느끼는 의사 모두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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