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사전예고제' 무시한 이주호 부총리…수능 6개월 앞두고 진행된 의대 증원, 그 피해는?
이 부총리, 이명박 정부 당시 과기부 장관으로 '대학 구조개혁' 추진 당사자…법 어기고 증원 강행
사전예고제 무시로, 수능 6개월 앞두고 수도권·지역 간 의대 진학 유불리 발생…수험생 혼란 책임 제기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사진=교육부
[법원의 의대 증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기각 판결, 남아있는 의문]
지난해 의대 재학생과 수험생 등이 일방적인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를 상대로 '대학입시계획 변경승인 효력정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5월 대교협의 대학입시계획 변경승인은 법에서 정한 '대입 사전예고제'를 위반한 것인 만큼 법원이 제동을 걸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으나 해당 소송은 대법원을 포함해 1, 2, 3심 재판부 모두 '기각' 판결을 내리며 끝이 났다.
해당 소송의 쟁점은 '대입 사전예고제'의 예외 사유인 '대학구조개혁'에 따라 의대 정원을 증원한 것인지 여부로, 법조계는 유일한 예외 사유인 '대학구조개혁'이 20여년전부터 진행돼 온 정부의 대학 정원 감축을 의미함에도 재판부가 이를 외면한 채 '기각'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고등교육법에서 정한 '대입 사전예고제'를 무시한 채 의대 정원을 늘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 구조개혁'을 대입 사전예고의 예외로 인정하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증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신청인이 제출한 근거를 통해 그간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의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의대 정원 증원을 '대학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정부는 그간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 등을 위한 의료개혁의 차원으로 의대 정원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부실 대학 통폐합, 정원 감축에 방점이 찍혀온 '대학 구조개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정부가 의료개혁을 위해 어떻게든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했다면 법에 따라 1년 10개월 전인 고2 4월 말에는 입시계획을 발표하라는 대입 사전예고제대로 2024년에 입시계획을 발표하고, 2026학년도부터 정원 증원을 시행했으면 된다.
하지만 정부는 법을 위반한 채 의대 증원을 '대학 구조개혁'이라고 주장해 대입사전예고제를 무시한 채 수능을 6개월 앞두고 정원을 늘림으로써 수많은 수험생을 혼란에 빠뜨렸다.
놀라운 점은 이를 추진한 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 구조개혁이 가장 공격적으로 진행된 이명박 대통령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교과부 장관으로 당시 국립대학 구조개혁 추진한 이주호 부총리
이 부총리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을 거쳐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이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 당시 '2011년도 국립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미충원 현상에 대비'하고자 부실대학과 비인기과 통폐합 및 퇴출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주호 당시 교과부 장관은 대학 및 전문대학 정원을 2918명 감축하는 2012학년도 정원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강력한 대학구조개혁 의지를 표현했다.
실제로 당시 4년제 대학들은 간호정원 등 총정원 881명을 감축했고, 전문대학은 2037명을 감축하는 등 정원 감축을 진행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된 이주호 장관은 대학구조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을 위한 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국립·사립대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추진한 교육부의 '글로컬대학30' 역시 대학 구조조정 차원에서 지역별 선도 대학을 집중 지원하고, 여기서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사실상 스스로 문을 닫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윤석열 대통령, 대학 구조개혁 무시한채 정원 증원책 여럿 추진…첨단분야 순증도 논란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역대 정부의 장기적 계획에 따라 진행된 '대학 구조개혁'과 상관 없이 정권의 필요에 맞춰 대학 정원을 증원하는 정책을 여럿 추진했다.
그중 하나가 2023년 4월 교육부가 추진한 유망한 학과인 반도체, 인공지능, SW‧통신, 에너지·신소재, 미래차‧로봇, 바이오 분야 등 첨단분야 대학 정원 증원이다. 당시 교육부는 첨단분야에 대해 수도권 817명, 비수도권 1012명 순증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대학정원 증원은 23년만에 일어난 일로, 윤석열 정부의 첨단분야 정원 순증은 지방대를 중심으로 반발을 일으켰다.
그동안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 균형발전 등을 이유로 지난 1999년부터 수도권 대학 입학 정원 총량을 11만 7145만명으로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간 정부가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대학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가운데 수도권 대학 정원을 확대하는 정책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비판이 쏟아졌다.
또 첨단분야 증원 역시 의대 증원과 마찬가지로 '대입 사전예고제'를 어기고 진행됐는데, 첨단분야 증원이 그 유예사항인 '대학 구조개혁'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어났다.
물론 이전에도 타 부처의 정책에 따라 일부 학과에서 정원을 늘리는 일은 존재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정책에 따라 간호학과 등 보건의료분야 대학의 정원이 증원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다만,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대학 구조개혁'의 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에 대입 사전예고제를 따르지 않고는 '순증'이 불가능했다.
이에 간호학과, 임상병리학과, 작업치료학과 등 보건의료 정책에 따라 대학 정원을 급하게 늘린 경우, 해당 정원을 배정받은 대학들은 해당하는 인원만큼 타학과 정원을 조정하도록 해 논란을 피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늘면서 지역·수도권 간 유불리 발생해 피해…수험생 입시정보 권리 침해까지
이처럼 대입 사전예고제를 무시한 채 진행된 대학 정원 증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수험생들이 적정한 시기에 입시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해당 학과의 재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증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신청자인 수험생 3명과 반수생 2명, 의대생 5명 등 8명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입 사전예고제를 위반한 채 그해 11월에 진행되는 수능을 불과 6개월 앞둔 5월 24일, 의대 정원을 무려 1509명이나 늘리는 대학입시계획 변경을 승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의대 정원이 비수도권대학을 중심으로 늘어나면서 가장 많은 폭으로 정원이 늘어난 충청도와 강원도는 지역인재전형이 2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의대 증원의 '수혜지'로 꼽혔다.
대전(226명), 충남(96명), 충북(142명)을 포함해 충청권 6개 의대 지역인재전형 규모는 464명으로 관내 고등학교 수를 산술적으로 비교한 결과 학교당 2.4명이 지역인재전형으로 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고, 강원지역 4개 대학도 지역인재전형 규모가 147명으로 권역 내 고3 학생 수 대비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이 1.3%로 전국 최고가 됐다.
이로 인해 충청도와 강원도에 거주하던 수험생들은 수능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보다 의대 진학에 있어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며 혜택을 받게 됐고, 반대로 타 지역의 수험생,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는 수험생들은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또 수험생들이 진학을 원하는 서울 소재 의대는 정원이 늘지 않으면서 실제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으로의 진학은 몇 배나 어려워지게 됐다.
무엇보다 고3은 물론 N수생과 직장인까지 수능에 뛰어들게 만든 의대 정원 증원 발표였지만, 이후에도 법 위반 가능성과 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 등으로 모집정지, 입학 취소 등 가능성이 떠오르면서 수험생들의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처분 소송을 담당했던 법무법인 동인의 이상준 변호사는 "작년 의대증원으로 의예과 1, 2학년생들과 최상위권 N수생들이 대거 입시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졌음에도 서울 소재 8개 의대는 정원이 전혀 늘어나지 않아 수험생들은 서울 소재 8개 의대에 합격할 가능성이 예년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워지는 불이익 등 각종 혼란과 혼선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그로 인해 수험생들은 고등교육법령상 사전예고제 규정이 명문으로 보호하고 있는 법률상 이익인 입시의 안정성과 공정성을 직접적으로 침해당했다. 가처분 소송에서 이에 관해 충분히 주장하고 입증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세상을 속일 순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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