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허윤정 교수 “10년 걸쳐 개선된 외상의료 의정갈등으로 6개월 망가져"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지난해 3월, 창문도 없는 1평 남짓한 당직실에서 허윤정 교수(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조용히 피켓을 들었다. 한 달 전 정부가 발표한 의대증원 2000명 등 필수의료 패키지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직전 일주일 동안 당직실을 떠날 수 있었던 건 이틀에 불과했다.
허 교수는 피켓을 든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심해로 가라앉는 필수의료의 갑판 위에서 허우적대다가 우연히 손에 조명탄을 쥐었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조명탄을 쏘아 올리려 한다”고 썼다.
어느덧 1년여가 흘렀지만 의정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대한민국 의료는 빠르게 망가지고 있다. 허 교수는 여전히 당직실을, 권역외상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사직서수리금지 명령 때문이었을까. 허 교수가 수차례 냈던 사직서는 끝내 반려됐다.
허 교수는 지난달 그간 외상센터에서 일하며 겪은 일과 생각을 모아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당초 지난해 2월 ‘또 다시 살려내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던 책은 의정 사태의 영향으로 뒤늦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그 사이 변해버린 의료현장의 모습과 의정 갈등 상황에 대한 생각도 추가했다.
책에서 허 교수는 외상외과 의사 등 생명을 살리려는 의사, 예비 의사들을 멸종위기종인 ‘크낙새’에 빗대며 “내가 펜을 든 이유는 크낙새를 찾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13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허윤정 교수를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
평생 바친다면 '외상외과'…가족 전폭적 지지 덕분에 가능
- 약대를 졸업하고 의전원에 들어갔고, 이후 수련을 거쳐 외상외과 의사가 됐다. 의전원에 들어간 이유, 외상외과 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눈앞의 환자 한 명 한 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신약을 개발하고 이로 인한 수혜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하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다만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약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하는 삶이 방식이 내 성격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약사면허 시험과 의전원 입시를 동시에 준비했던 기간은 죽을 만큼 힘들었다. 공부하며 중간중간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여자 주인공을 보고 외상외과 의사를 꿈꾸며 위로받았다.
사실 외과는 주로 암 수술을 하는 과다. 그런데 나는 레지던트 시절, 수 많은 환자들이 재발하는 암과 기나긴 싸움을 하는 모습을 힘겹게 지켜봤다. 반면에 중증 외상은 수 시간, 수 분 내로 환자의 생사가 결정되는 화끈한 분야다. 평생을 바쳐야 한다면 후자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 여성 외상외과 의사로서 힘든 부분은 없나.
여성 외상외과 의사의 절대적인 수 자체가 적다 보니 환자 보호자들이 처음 만났을 때 나를 외상외과 교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언제 오냐’ ‘당신 말고 수술하신 교수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같은 말도 들어봤다. 직장 동료들은 어차피 나를 여성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 없다.
- 자녀 육아 등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당직 근무 등이 있어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건 확실하다. 지금은 아이가 7살인데, 3~4살 때는 엄마가 밤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힘들었다. 아이도 서러웠을 거고 나도 그랬다. 그래서 책의 첫 장에도 딸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그래도 고마운 건 아이가 나이에 비해 엄마를 빨리 이해를 해줬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이가 내 당직표를 파악하기 위해서 달력 읽는 법을 또래보다 빨리 배웠다. 매달 20일에 당직표가 나오면 다음 달에는 엄마가 이날에 집에 없을 거라고 달력에 표시를 해준다. 그럼 아이가 미리 인지하고 ‘그날은 아빠랑 즐거운 시간 보낼게요’라고 한다.
- 최근 외상센터에서 겪은 일들을 기반으로 책을 발간했다. 바쁜 와중에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뭔가.
외상센터 환자 중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안정된 삶을 살던 사람은 별로 없다. 안 그래도 힘겹게 하루하루 이어가던 생이 하루아침에 발생한 사고 때문에 더 치명적으로 박살 나게 되는 것이다. 건설 현장이나 농경지에서의 산업재해가 대표적이다. 음주운전이나 묻지 마 살해 같은 너무나 억울한 사건 피해자들도 많다. 이런 것들은 사회가 규범으로써 예방하고 막아줘야만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은 사건 사고로 사람들의 몸과 인생이 부서지는 걸 보면서 ‘이런 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환자의 사연이 머릿속에서 100번 이상 맴돌고 이로 인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지경에 이를 때마다 한 편씩 글을 토해냈다. 그래서 글을 쓰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의정 사태 속 외상센터도 타격…입사 후 5년째 외상센터 후배 없어
- 국내 예방가능 외상 사망률은 권역외상센터가 본격 가동되면서 2015년 30.5%에서 2019년 15.7%까지 낮아졌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현재 국내 외상의료 시스템은 어떤가.
외상센터가 처음 생긴 2012년 35%였던 예방가능 외상 사망률은 지난 2021년 기준 13.9%까지 감소했고, 이제는 0%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정확한 전국 통계를 내는데 2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당장 작년의 사망률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현장 의료진들이 체감하기로는 (의정 사태의 영향으로) 외상센터가 생기기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본다. 이에 대한 실제 증례를 책의 마지막 챕터에 담았다.
예방가능 외상 사망률이 개선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돌아가는 데는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다 정부 덕택이다.
- 구체적인 사례를 말해달라.
책에서 썼듯이 경남 사천에서 사고가 났는데 받아 줄 외상센터가 없어서 천안에 있는 우리 병원에까지 연락이 온다. 실제로 밤에 당직을 서다 보면 황당한 전화들이 많이 온다. 이미 40분째 CPR(심폐소생술) 중인데 포항에서 환자를 이송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이 있어도 더 이상 기사화되지 않는다. 너무 자주 있는 일이 돼 버려서다.
이번 의정 사태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사례는 한 달에 한 건 발생해도 난리가 났고, 예방책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이젠 우리도 그럴 여력이 남아있지 않고, 환자들은 그냥 죽어가고 있다.
-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를 통해 외상외과의 열악한 현실, 특히 치료할수록 병원에 적자가 늘어나는 현실이 조명받았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나.
이국종 교수의 등장으로 권역외상센터라는 게 전국에 설립되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고, 이 자리를 빌려 이국종 교수께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에서 생색내기식 운영을 하고 있다는 거다. 수 천억원을 들여 외상센터들을 설치하고 지원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사람들이 외상외과를 생각했을 때 수술을 떠올리지만, 실제론 중환자실 치료가 80~90%를 차지한다. 이처럼 중환자실 치료가 근간인데 해당 분야가 흑자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중환자 치료, 필수의료 분야의 환경이 변한 게 없는데 외상외과가 갑자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을 리 없다. 게다가 열악한 처우는 10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고 일할 사람이 없으니 센터가 설립만 됐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곳들이 태반이다. 우리 센터에는 2020년에 내가 입사한 이래로 들어온 후배 외상외과 의사가 아무도 없다. 외상외과 의사들은 늘 병원에서 핍박받는 입장이다. 돈도 못 버는데 병원에 요구하는 건 많으니 병원 운영진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년 전에 나라에서 사준 장비가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아서 새로 사달라고 하면 정부도 병원도 못 들은 척한다.
가령 12년 전에 산 뇌압을 측정하는 기계는 오래되다 보니 더 이상 소모품을 팔지 않는다. 그냥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나라에 다시 사달라고 하면 부서지진 않았으니 그냥 쓰라는 식이다. 병원에 구입을 요청해도 병원 운영진은 수가 등을 고려해 얼마나 검사해야 구매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지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결국 새 기기를 살 수가 없다.
-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소수의 인력을 갈아서 해왔던 건데,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외상센터에는 원래 전공의가 없었지만, 외상외과는 전 신을 다쳐오는 환자의 특성상 모든 과가 달려들어야 한다. 의정 사태로 전공의들이 사직하면서 다른 과들이 여력이 없으니 외상센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다.
- 외상센터를 비롯해 소위 필수과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가장 큰 우려는 민형사 소송인 것 같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위기는 정부의 실책도 실책이지만 의료 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형사 소송이 남발되면서 더 가속화됐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필수의료와 일반 의료를 구분하고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책임을 면책시켜야 한다.
법조계는 다른 나라의 입법례에서 의사만 형사책임을 면책시키는 법은 찾을 수 없다고 반박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와 같이 온 국민이 저수가로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나라도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특수한 환경임을 고려해 다른 나라에는 없더라도 우리나라에선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민사 소송도 마찬가지다. 국가 보험자의 의료 보상 책임 주체는 국가여야 한다. 필수의료 종사자를 배상 종합보험에 가입하게 해주고 보험료 등은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 수가, 소송 문제 등이 해결되면 외상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들도 늘어날까.
물론이다. 이번에 책을 발간하고 나서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접어야만 했던 수많은 의사들의 연락을 받았다. 처음 의사가 됐을 때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그 열정과 뜨거움을 다시 느끼고 눈물 흘리게 해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필수의료에 종사하다가 다른 분야로 떠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나도 여건만 허락한다면 다시 필수의료에 종사하고 싶은데 나라가 못 하게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필수의료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다.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그들의 날개를 꺾고 다시는 펼 수 없게 순장까지 해버린 정부와 위선자들만 가득할 뿐이다.
필수과 살리려면 소송∙수가 문제 해결…정부, '사기 개혁' 인정하고 환자들에 사과해야
- 온갖 어려움에도 외상센터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뭔가.
이번 사태를 겪으며 평생의 꿈이었던 외상센터를 떠나고도 싶었다. 사표도 수 차례 제출했지만 정부의 사직금지명령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는 1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하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끝내 사직서는 처리되지 않았고, 지금도 병원 행정실 어딘가에 교수들 사표 100여 장이 담긴 상자가 있을 것이다.
당시엔 정부는물론 일반 시민들도 필수의료 의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 나라가 떠나고 싶어져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을 하기도 했다. 결국은 길거리에서 스러져 갈 환자들을 놓지 못해 돌고 돌아 제 자리에 있다. 최소의 인력이 최대치의 업무과부하를 감내하며 일하고 있는 외상센터의 특성상 외상외과 의사 한 명만 사라져도 동료들에게 타격이 너무 크다. 그리고 의사 한 명의 사직으로는 정부라는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이 그렇게도 위한다는 소위 ‘지방의 필수의료 종사자’로서 나의 발언권을 키워 투쟁을 이끌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책상에서 펜대만 굴리는 정부 관계자들과는 다르게 나는 현장에서 매일 처참한 참상을 목격하고 있는 당사자이고 남들보다 부족하지만 이를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알량한 재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믿었던 환자나 보호자한테서 민형사 고소를 당하는 날, 모든 걸 내려놓고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아직까진 그런 일이 없었지만 당장 내일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 의대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그동안 필수의료 종사자들은 얼어붙은 북극의 동토(凍土)와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무리 물을 뿌리고 거름을 줘도 아무것도 자라지 못할 황무지에서 정부는 우리에게 곡식을 키워 마을을 먹여 살리라고 명령했다. 바보 같은 우리는 맨손으로 동토를 파내고 얼어붙은 강물을 호호 입김을 불어 녹여가며 수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쪄낸 모를 갈라진 바닥에 심어도 볍씨는 뿌리내리지 못했다. 땅이 얼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나타나더니 여기 이 땅을 파헤친 자를 체포하겠다고 한다. 국토를 훼손하고 강물을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이 파렴치한 죄인들이 식량 부족의 원흉이므로 국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형하겠다고 한다. 지난 1년간 의료계가 겪은 일을 빗댄 것이다. 손에서 피가 나도록 동토를 파던 고마운 이들이 바로 우리 전공의들이다. 땅 파던 시간을 80시간에서 73시간으로 줄여준다고 그들이 돌아오겠나. 무고하게 죄를 덮어씌우고, 동토에서 쌀을 키워내라고 한 자들이 먼저 처단돼야 하지 않을까. 이 정책을 가장 앞장서서 이끌던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당연히 여기에 부역하던 고위 공무원들을 교체하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 의전원 시험을 준비하며 하숙하던 시절, 모두가 눈치를 보며 함구할 때 하숙집 주인 내외에게 ‘식당 밥이 너무 형편 없어졌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도 눈치 보지 않고 해야 할 말이 있다면 해달라.
현 사태를 촉발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제는 인정하고 말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은 의료개혁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거를 위한 프로파간다였고, 바닥나고 있는 보험 재정을 메꿔보기 위해 설계된 속임수 정책임을 말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사과해야 한다.
이 사기 개혁, 생명 경시 개혁으로 지난 1년간 희생당한 환자와 그들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암 진단이 늦어지게 해서, 1기였던 조기암이 4기 말기암으로 퍼져가는 동안 손도 한번 써보지 못하게 해서, 지방에서 중증외상으로 다친 젊은이가 전국을 헤매다 길바닥에서 죽어가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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