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의사들이 심평원 심사기준에 맞춰 환자를 치료하게 됐는지 참 답답합니다"
요양급여기준과 심사기준이 마치 의사들의 진료비 청구를 삭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복잡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삭감 피하기' 전쟁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로부터 현지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한 J원장 사건을 계기로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가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개원의 A씨는 22일 "의대에서 배우고 익혔던 의술을 심평원의 심사기준에 맞추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삭감을 피하기 위한 요령을 배우는 게 진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한 지역의사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열어 서로의 삭감 자료를 공유하기도 한다.
복잡한 '요양급여기준'을 사례별로 소개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삭감을 피할 수 있는지 논의한다는 것이다.
오늘과 내일이 다른 심사결과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 따르면 건강보험 요양급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진료 필요성이 인정되고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경제적으로 비용 효과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기준에 따라 진료해도 삭감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같은 치료를 하더라도 지난 달에는 진료비를 그대로 인정하다가 이번 달에는 삭감하기도 한다.
개원의 A씨는 "분명 같은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넘어가고 내일은 삭감하는 이유가 뭔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심평원이 말하는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이 기준마저도 자주 바뀌는 것 같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색안경 끼고 보는 것 같아 억울하다"
개원의 B씨는 "물론 심평원이 모든 청구분을 의심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 의사들을 색안경 끼고 보는 것 같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특히 환자가 두 가지 이상의 진료를 받을 때 이런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예방접종을 하러 온 환자가 머리가 아프다거나 속이 좋지 않다고 호소해 진료한 결과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굳이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심평원은 실제 진료를 한 게 맞는지 의심해 증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 B씨는 "심평원이 환자를 진료했는지, 과잉진료가 아닌지 등을 직접 확인하는 수진자조회도 문제가 많다"면서 "환자를 유도 심문한다는 것부터 잘못됐으며,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라리 심사기준 설명창구 마련했으면
이런 이유로 인해 의사들은 진료비 심사를 요청할 때마다 삭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삭감을 우려해 진료하고도 청구하지 못하는 사례 역시 적지 않다고 한다.
개원의 A씨는 "차라리 심평원에서 심사 설명 창구를 마련, 의사들이 진료비를 청구하면 이런 이런 것은 삭감 대상이라고 안내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모든 급여기준을 의사가 다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청구가 가능한지, 삭감의 대상인지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어야 할 정도라는 의미다.
A씨는 "심평원은 빅데이터의 우수성만 알리지 말고 심사기준 자료를 의사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급여기준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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