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남극 세종기지로 제31차 월동대원이 출발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남극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합쳐 지금까지 35명이 넘는 의료인이 함께 해오고 있는데, 극지로 떠난 이들인 만큼 남극을 다녀온 이후의 그들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남극을 다녀온 의사 모임인 '월동의사회'가 지난 달 22일 가진 제31차 의료대원 환송회 겸 송년회 자리에는 월동의사회 회장인 제2차 의료대원 서창식 원장, 의사 타투이스트(tattooist) 조명신 원장 등 민선영 과장, 국내 첫 여성 의료대원 이명주 원장, 병원을 운영하며 자체 화장품도 개발한 윤기범 원장 등 결코 평범해보이지 않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현재 월동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창식 원장은 공중보건의로서는 처음 합류한 남극세종과학기지 제2차 월동대원이다. 극지연구소에 첫 파견된 의료대원은 군의관이었다. 서 원장은 공보의 2년차에 당시 안산에 위치한 극지연구소가 남극에서 일할 월동대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13명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의사임에도 수염도 덥수룩하게 기르고 산악회 활동을 하던 당시 29살의 그는, 터프한 모습을 어필한 덕분인지 나중에 들은 얘기로 월동대장이 딱 보는 순간에 함께 하게 될 걸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는 "남극을 다녀온 후에는 공보의 1년차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남극 근무에 대해 소개를 했는데, 그 후로 남극을 지원하는 광풍이 불어 한동안 공보의하면 누구가 가보고 싶어하던 곳이 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한동안 잊고 살던 남극을 다시 떠올린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현재 월동의사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이어진 의무사무관의 연락을 받고서부터다. 남극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그리고 쇄빙선 아라온호에서 근무한 의사들을 중심으로 2012년 '월동의사회'가 결성되고, 현재 극지연구소가 위치한 송도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이후 고대 극지연구회 등과 함께 극지의학회를 창립해 학술대회 개최 및 해외 극지 의료인과의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그는 지금 강남역에서 성형외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서 원장에 이어 남극 세종기지를 다녀온 이는 조명신 원장. 그는 남극이 너무 가고 싶어 월동대원 모집에 지원하던 당시 복지부 장관에게 본인이 남극에 가야만하는 이유 7가지를 든 장문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영향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남극 세종기지 1989년 제3차 대원이 됐다. 조 원장의 특별한 경험은 남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극을 다녀오고 성형외과를 운영하던 그는 타투를 주로 지우는 역할을 하다가 타투(tattoo, 문신)가 본래 의료행위라는 걸 알게 되면서, 호기심에 일부러 타투를 배웠다. 송도 락페스티발에 초청돼 타투 시연을 하는 등 데코레이티브(일반 장식용) 타투 분야에서 활약하던 그는 지금은 모발 이식을 대신하는 메디칼 타투를 시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화실을 다니며 그림을 배워 작품전시회를 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한양대에서 맘모스 연구 인류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조명신 원장은 "남극이 인생에 있어 준 임팩트가 크다"며 "남극에서 근무한 특별한 경험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남극은 사람들에게 꿈과 가능성을 심어주는데, 비록 살면서 생활 속에서 묻혀질 수 있지만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편,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2004년부터 2005년에 걸쳐 남극 세종기지에서 근무한 홍종원 교수는 남극에서의 장면을 카메라와 노트 속에 담아 2007년 남극 사진집과 체류기를 냈다. 그는 체류기를 통해 세종기지가 처음 생기던 1988년 2월, 중 3이 될 무렵 뉴스를 통해 전해지던 소식을 들으며 남극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져왔던 것과 군복무를 준비하며 세종기지 의료대원 근무를 간절히 희망했던 기억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제18차 월동대원이돼 직접 남극을 체험하고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올 수 있었다.
별도로 연락이 닿은 홍종원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 남극 사진집을 내려고 출판사를 알아보다 초안을 만들어야 하는 걸 알게 됐고, 사진 설명을 넣다 보니 자연스레 남극에서 있었던 이야기, 평소 느꼈던 소소한 생각까지 담아 30대의 삶을 정리한 자서전과도 같은 남극체류기를 남극 사진집과 함께 출판하게 됐다"고 밝혔다. 4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그는 남극에서의 시간을 "힘든 일이 생기고 삶에 찌들어가는 순간마다 그시절을 생각하면 그립고, 또 정리하고 매듭짓고 다음을 넘어갈 수 있었던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월동의사회, 극지의학회 회원들의 다양한 모습만큼 자발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극지의학회 학술 활동이 극지에서의 의료환경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극지연구에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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