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길병원은 미국 IBM사의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를 도입해 현재 1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으며, 부산대병원도 얼마 전 '왓슨 포 온콜로지'와 '왓슨 포 지노믹스'를 도입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달 인공지능을 이용해 영상판독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해 향후 인공지능을 실제 환자의 진단과 치료 등 의료 현장에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인공지능이 의료와 함께 공생을 시작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많은 의사들은 인공지능이 의료에 어떻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이것이 정말로 실효성이 있는지 또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실제로 왓슨을 이용해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왓슨의 도입 계기
많은 의료 관계자들은 가천대 길병원에 이어 부산대병원에서도 왓슨을 도입하자 어떤 계기로 왓슨을 도입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실제로 처음에는 가천대 길병원에서도 왓슨 도입에 반대하는 의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굳이 왓슨을 도입할 필요가 있냐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이에 가천대 길병원은 "암환자가 여러 병원을 헤매며 의료쇼핑을 하는 것을 막고, 최상의 치료방법을 구현해 환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왓슨을 도입하게 됐다"면서 "불필요한 의료비를 줄이고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환자를 막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병원 저 병원 가지 않고도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데 왓슨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정밀의료가 부상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 미래부가 국가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로 AI를 거론하면서 의료계도 이에 발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는 부산대병원의 경영 목적과도 일치했고, 신중히 접근한 결과 도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부산대병원은 권역 기반의 인공지능 의료기관으로 나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도 덧붙였다.
실제 진료에 도움 되나?
왓슨은 뉴욕의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MSKCC)의 데이터베이스와 290여종의 의학저널 및 문헌, 200종의 교과서, 1200만 쪽에 달하는 전문자료 등을 습득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환자의 정보를 입력하면, 가장 권고하는 치료법과 해볼 만한 치료법, 하지 말아야할 치료법 이렇게 3가지를 구분해 보여주고, 왜 이러한 제안을 했는지를 안내한다.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영생 교수는 "암환자에 대한 전문의들의 다학제 진료와 더불어 왓슨의 소견까지 취합한 뒤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고 있다"면서 "이전과 비교해 환자를 보는데 왓슨이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며, 왓슨을 이용하는 의료진 모두 지금은 만족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환자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 4~5명의 전문의가 함께하는 다학제 진료 시스템과 함께 인공지능이 제시한 치료법이 의료진이 추천하는 치료법과 상당수 일치하면서 더욱 신뢰를 주고 있다는 것.
또한 김 교수는 의료진이 100% 알고 있는 알고리즘이라도 왓슨이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설명하며 "의료라는 것은 실수를 최소화해야 하는 것으로 왓슨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의사가 왓슨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왓슨을 이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이를 환자에게 보여줄 때는 의사들이 일일이 찾아 확인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의 역할이 크다"고 덧붙였다.
의사와 왓슨, 이들의 미래는?
무릇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어떤 직종이 미래에 사라질 것인가'가 가장 화두로 떠올랐다.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달로 향후 대체할 수 있는 직업들의 순위가 한창 언론에 비춰졌고, 의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김 교수는 "왓슨은 갈수록 더 많은 양을 학습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의사를 100% 대체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에 따라 케이스가 다르고, 상황에 따라 인간이 할 수 있는 판단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사는 환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치료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지만 왓슨은 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부작용 등에 대한 처치는 의사들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왓슨이 향후 모니터링 과정까지 습득해 학습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그런 과정은 없으며, 스스로 훈련하지만 환자를 케어하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의료진의 역할"이라고 환기시켰다.
왓슨에 대한 우려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에서 의사들은 '인공지능과 나의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한 언론에서는 환자에게 '인공지능과 의사의 진단이 다를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자 환자들은 인공지능을 선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의사의 입장은 어떨까?
김 교수는 "왓슨이 제시한 치료가 근거가 없거나 엉뚱한 방향이라면 절대 환자에게 추천하거나 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김 교수는 "그동안 왓슨과 의견이 크게 다른 적은 없었고, MSKCC에서 왓슨에게 벗어난 치료법을 트레이닝 시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의견 차이는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교수는 왓슨의 프로그램이 미국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보험체계나 치료법, 약제 등의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점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왓슨이 제시하는 것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약제나 치료법, 아예 쓸 수 없는 항암제 등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이렇게 왓슨이 추천한 것 중에 우리나라에서는 비용 부담이 훨씬 많거나 효과는 비슷한데 부작용이 더 우려된다거나 하는 것은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학제 진료를 통한 의사들의 의견과 왓슨의 의견을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에게 이해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환자가 왓슨의 치료법을 고집할 경우 김 교수는 환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치료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왓슨은 장·단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용해 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인공지능 이외에도 다른 좋은 치료 솔루션을 개발하는 병원도 있겠지만 만약 왓슨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병원의 환경과 특성을 고려해 어떤 측면을 부각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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