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8.23 07:21최종 업데이트 24.08.23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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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부담 줄여준다더니…과실 없어도 의료사고 설명하고, 비의료인 감정위원 추가?

의료계 "내년도 필수의료 전문의 배출 암담...당장 와 닿는 대책 필요"…환자·시민단체는 특례법 반대

22일 열린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향' 토론회. 사진=보건복지부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필수의료 기피 원인 1순위로 꼽히는 의료사고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뚜껑이 열린 정부 대책이 오히려 필수의료 기피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는 의정 갈등으로 당장 내년도부터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피부에 와닿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환자단체는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을 요구하며 의료사고 특례법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향' 토론회에서 이같은 논의가 제기됐다.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비의료인 감정위원 포함 '옴부즈만'…의료사고안전망 대책 발표

먼저 이날 토론회에서는 보건복지부 강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그간 전문위 논의에 따라 구체화된 '의료사고안전망 구축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여기에는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의료분쟁조정제도 혁신 방안 ▲배상보험·공제 확충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방향 등이 포함됐다.

강 과장은 "그간 의료사고 발생 초기 법적 분쟁 우려로 인해 의료기관이 사고 설명 및 유감 표시 등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의료진과 환자 간 소통 부재로 상호 감정이 악화되고 민·형사상 소송이 증가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했다"며 "이에 전문위는 의료사고 설명 의무를 부과하되, 설명과정에서 발생하는 유감 표시 등을 수사·재판과정에 불리한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료사고 설명' 법제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전문위는 또 의료분쟁 조정제도 신뢰성 제고를 위해 환자 조력을 강화하는 가칭 '환자 대변인' 신설과 함께 의료사고 감정에 대한 모니터링 및 평가에 의료분쟁 중재원과 환자·소비자·시민단체, 의료인 단체 등 3자 협의체가 참여하는 '국민 옴부즈만' 제도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현 의료사고 감정부가 상임위원 1명, 의료인 1명, 법조 1명, 환자·소비자 2명 등 5인으로 이뤄져 운영 중이나, 향후 비의료인 감정위원의 역할을 키우면서 의학적 감정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강 과장은 그 외에도 신속하고 충분한 환자·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한 배상보험·공제체계 확충방안과 불가항력 사고 보상 강화방안, 의료분쟁 조정절차-수사절차 간 연계를 통해 불필요한 대면 소환·조사를 최소화하는 방안과 의료사고 형사 특례 법제화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의료사고 부담으로 진료현장 떠나지만…"당장 필수의료 유인할 대책 없어"

이어진 토론회에서 분당차병원 신경외과 신승훈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부터 의사에게 과실이 없는데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경우는 과연 누가 보상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는데, 지금도 정답이 없는 상태인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소방관이 불을 껐는데 실수로 불씨가 남아 재발하면 소방관을 형사처벌해야 하는것인지, 경찰관이 범인을 잡았다가 놓치면 그 경찰관을 형사처벌해야 하는 것인지, 판사가 실수로 억울한 사람을 옥살이를 시키면 그 판사를 형사처벌해야하는 것인가. 이와 연관지어서 의사의 의료과실에 대한 판결도 고려해 봐야 한다"며 "물론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진료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인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특히 신 교수는 "신경외과는 뇌혈관질환 응급환자가 많은데 후배, 제자들이 '선생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 분야의 후계가 앞으로 없을 수 있다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다. 현 의료사태에서 중증‧응급 분야로 전공의,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할 무엇인가가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젊은 세대들은 본인이 하기 싫으면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의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이 젊은 의사들을 필수의료로 유인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정부의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 가입 의무화에 대해 실효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신 교수는 "정부는 의료인의 공공재적 특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에서는 빠져 있다. 정부, 의료기관, 의료인 3자가 의료사고 보상을 공동으로 분담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또 의료사고 특례에 대해 "엊그제도 새벽 2시에 수술을 들어가 새벽 7시까지 수술을 했는데 필수의료 분야에서 중과실, 사망 등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레지던트도 없고 간호사들과 둘이서 수술을 하고 있다"며 "환자 입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의료인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수술을 할 사람이 없어질 것 같다"며 의료사고 안전망을 철저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과 전문의기도 한 인제대 일산백병원 이성순 원장 역시 "이번 사태 이전까지 심장내과 전문의가 1년에 700명이 나왔다. 이번 의정 갈등으로 반토막이 날 것으로 보인다. 내과를 하려던 전공의 절반이 내과를 안하겠다고 한다"며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 원장은 "심근경색증은 1시간 안에 혈관을 뚫어주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는데 이것을 할 수 있는 심장내과 의사가 전국에 30명밖에 되지 않는다. 호흡기 중환자의학 전문의도 매년 55명에서 17명으로 줄었다. 코로나19와 관련돼 가장 중요한 감염내과 의사는 1년에 17명이 수련을 받아 전문의가 됐는데 현재 4명밖에 없다"며 "지금 의정사태가 필수의료를 더 기피하게 만들고 내년도에는 내과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을뿐더러 응급실, 중환자실로 오는 환자를 볼 의사가 없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개혁 특위가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근본 목적은 의사들의 고소, 고발, 소송에 대한 우려를 줄여 필수의료 의사 감소를 막는 것이 아닌가"라며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제도적인 보안 장치를 마련하려고 했던 전문위의 1차 목표가 자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환자단체가 요구하고 있는 '사과법'이나 '의료사고 소통법'을 법제화하는 것이 현재 필수의료를 고민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메리트가 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 원장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의사들은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은 필수의료과를 더 피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당장 올해 안에 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더 지원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실질적으로 의사들을 안심시키고 필수의료과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 원장은 의료 감정 모니터링에 환자·소비자·시민단체를 포함하는 제도에 대해 "감정이란 제3의 의사, 전문학회 혹은 의사협회에서 양심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에 따라 제공하며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게 돼 있다"며 "의료 감정은 과학적, 전문적인 분야인데 비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 과학적,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환자 측, 사과했더라면 소송까지 안 갔을 것…입증책임 전환 없는 의료사고특례법 반대

이같은 의료계의 우려와 지적에도 환자단체와 소비자 단체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의료사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의료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의료과실이 있든 없든 왜 이런 중상해나 사망이 발생했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법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형사 고소가 없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악결과가 발생했을 때 당연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관련 법이 있는 나라도 있고, 없는 나라도 있는데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그간 만났던 많은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들은 의사가 사과만 했었어도 이렇게 소송까지 가지 않았다고 많이 말을 한다. 의료계에서는 사과를 강요한다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굳이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다. 설명할 때 충분히 감정적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의료인이 마음껏 사과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을 법적인 증거로 채택하지 않도록 하다는 측면에서 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의료계가 반대한다면 꼭 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의료감정에서 사망과 같은 중상해 사건의 경우 복수 감정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5인 감정부를 구성해 다른 위원이 보는 앞에서 가정을 하면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상임감정위원이 회의를 주재하고 5명 중 의사가 회의를 주재하는데 편파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 반대한다며 "유사한 법안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입증 책임이 전환돼 있다. 그런데 의료사고 처리특례법은 입증 책임 전환이 안 돼 있다. 여전히 환자가 입증을 해야 한다. 의료사고 입증 책임이 전환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사망이나 중상해도 특례로 적용하도록 돼 있는데 빠져야 한다"며 "사과법, 소송보다 조정할 수 있는 방법 등 소송을 안 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래도 안 되면 특례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수술을 하는 교수 중에 실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나온 사람은 알아도 진짜 순수한 의료사고로 설명도 했고, 수술도 고난도·고위험이었는데 처벌을 받은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계가 이대목동사건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검찰이 의사를 구속했다. 의료계는 경찰청, 검찰청 앞에가서 집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수사하지 말라고, 의사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검찰에 가서 말해야 하는데 국회에 특례법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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