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얼마 전 한 학회에서 경품으로 김환기 작가의 판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을 보고 독자분들께 김환기 작가에 대해 한 번 소개드릴까 합니다. 아마 미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마 '김환기, 박수근, 이우환'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듯합니다.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있었는데, 국내 작품 최초로 100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이 된 것입니다. 외국 사업가에 의해 8800만 홍콩달러(약 132억원)에 김환기 작가의 '우주'라는 작품이 낙찰됐다는 소식을 듣고, 외국으로 좋은 작품이 팔려 나갔다는 아쉬움과 우리나라의 작품이 100억원이 넘는 가치를 인정 받았다는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나중에 이 작품을 경매로 구입한 사람이 외국 사업가가 아닌 글로벌 세아그룹의 회장인 ‘김웅기’라는 것이 밝혀지며,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은 글로벌 세아그룹의 서울 대치동 본사 1층에 위치한 갤러리 ‘S2A’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132억원이 최고가 기록을 세운 1971년작 ‘우주’라는 작품 외에도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이미 여러 차례의 경매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우리나라 미술품 경매가 상위 10위까지의 작품 중 무려 9개가 김환기 작가의 작품입니다.
경매 최고가 9위인 이중섭 작가의 ‘소’(47억원)만이 유일한 김환기 외 TOP 10 작품입니다. 이중섭은 김환기와 절친한 사이인데, 두 명의 친구가 한국 경매의 역사와 기록을 같이 공유한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913년 전남 신안군의 섬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아버지가 대지주여서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중학 시절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 니혼대학 예술과 미술부를 졸업했습니다. 일본의 화가들과 교류를 하며, 추상화에 대한 실험을 하던 시기입니다.
한국에 돌아온 김환기는 고향으로 내려가 대지주였던 아버지의 유산을 소작농과 집안의 머슴들에서 골고루 나눠 주고, 아내와 이혼도 하게 됩니다.
1944년 변동림이라는 신여성과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인연이 김환기의 인생 전체를 바꾸게 됩니다. 변동림 역시 재혼입니다. 같은 재혼이긴 하지만 둘의 처지가 매우 다른 상황이라 변동림의 본가에서 결혼을 매우 심하게 반대합니다. 이 과정에서 변동림은 원래의 성을 버리고, 김환기의 성인 김씨, 김환기의 아호인 향안을 사용해 ‘김향안’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집안의 반대는 심했지만, 한국 예술계의 큰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변동림의 첫 남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인 ‘이상’입니다. 이상의 갑작스런 죽음(폐결핵)으로 단 4개월 만에 과부가 됐으나, 7년 후 또 다른 천재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천재 시인과 천재 미술가, 두 천재를 남편으로 맞은 특별한 여성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1950년대에 김환기는 조선의 백자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매화와 달, 그리고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를 하며 돈이 생길 때마다 달항아리를 수집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달항아리는 워낙 커서 위, 아래 반반씩 흙으로 빚어 붙이는 작업을 해서 만들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항아리마다 모양과 비율이 달라서 자연스러운 비대칭의 매력이 있습니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소재였습니다.
김환기는 활동 무대를 세계로 넓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아내 김향안이 이를 알고 1955년에 먼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서 미술평론을 공부하며, 현지 예술가들과 인맥을 쌓게 됩니다. 이 후 김환기가 파리로 와서 미술활동을 하게 됩니다. 귀국 후 홍익대 교수로 재직했고, 1964년 미국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고가의 경매 작품들이 뉴욕시절에 그려진 ‘전면점화’ 작품들입니다. 시기로는 1970년 초반 작품들입니다. 이 시기가 김환기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가인 ‘우주’를 포함한 작품들은 여러 개의 점을 찍고, 그 주변에 사각형을 그리고, 빈칸을 옅은 색으로 칠하는 방법으로 표현했습니다.
김환기는 뉴욕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며 늘 고향을 그리워했는데,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하늘의 별을 보면 고향에서 보던 별과 그 모양이 같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 그리움과 사무치는 마음을 한 점 한 점 표현한 것이 전면점화입니다. 점 하나 찍고 고향의 산을 떠올리고, 점 하나 찍고 고향의 산과 들을 떠올리고, 점 하나 찍고 고향의 바람과 공기를 떠올리기를 수만번 하면, 거대한 작품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환기의 작품을 보면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잘 표현이 돼있고, 모든 에너지가 투영된 우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한 점 한 점, 온 에너지를 모아 찍는 작품 활동을 반복하다 보니, 김환기는 목과 허리에 고질적인 디스크 증상이 심했습니다. 그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회복하는 과정에 침대에서 낙상을 하는 바람에 의식불명에 빠졌고, 1974년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가 1940년대부터 이어져 온 추상화에 대한 실험이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됐는데,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사망 직전인 1970년부터의 작품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철학적인 완성도가 높아 더 가치있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 작가 사후에 환기 재단을 설립하고, 각종 전시회를 주관했으며, 작품을 모아 한국으로 돌아와 1992년 국내 최초의 사설 미술관인 ‘환기미술관’을 설립했습니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보면 큰 감동을 받습니다. 웅장한 크기에서 오는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 바로 김향안 여사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과 파리, 뉴욕을 거치면서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존경과 배려의 사랑 이야기가 보다 풍요로운 감성을 자극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넘버 원 작가' 김환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봐야 광활한 우주의 시공간에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김향안 여사가 설립한 환기미술관은 종로구 부암동에 있습니다. 김환기의 시대별 작품을 만날 수가 있고, 미리 예약을 해서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도슨트 투어를 예약을 하고, 30분 전부터 한바퀴 미리 둘러 보시고,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둘러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회가 9월 10일까지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개인소장 작품 등 국내에 퍼져 있는 여러 작품을 한 군데서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132억 최고가 작품을 소장한 ‘S2A갤러리’, 지금 이 작품은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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