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사명감과 희생 정신만으로는 불가능한 필수의료
최근 한 언론을 통해 '내외산소'가 무너지고 있다는 특집 기사가 실렸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로 구성된 필수의료 진료과의 인기가 더욱 떨어지면서 인프라가 흔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역의 주요 대학병원에서도 전공의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고, 응급실은 소아과 의사 1명 없이 돌아가는 곳이 태반이며, 분만 산부인과 의원은 12년 사이에 반토막이 났다.
한국의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은 20년 전부터 나왔지만, 이 기사에서 더욱 슬픈 소식이 있다. 바로 필수의료 영역 안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의사는 면허를 따고 1년의 인턴 과정을 거친 후 전공 과목을 선택하는 첫 번째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3~4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전문의를 따면 세부 전문 분야 전임의(펠로우) 지원이라는 두 번째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힘들게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전공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더라도 두 번째 기로에서 또 다시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과는 코로나19 시국에 주목 받은 감염내과, 외과는 이국종 교수로 주목 받은 중증외상외과학, 소아과는 여러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소아 중환자 분야, 산부인과는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등을 기피한다. 가뜩이나 내외산소 전문의도 부족한데 그야말로 '설상가상'인 셈이다.
등산으로 비유를 하자면 혹독한 조건 속에 히말라야 중턱까지는 어찌저찌 사명감으로 올라 왔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기는 너무나도 힘이 들기 마련이다. 강철 체력과 사명감, 희생 정신으로 아무리 중무장을 해도 부족한 장비와 지원 속에 정상에 오르는 길은 너무 위험하다. 게다가 가족들의 걱정까지 등에 짊어지고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게 하려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고, 안전 장비가 필요하다.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명예든, 물질이든 그에 걸맞는 대가를 줘야 한다. 20년 전부터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주장했지만 현재까지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필수의료 기피 상황이 더욱 악화하자 정부는 이제 '공공 산악인들'을 강제로 만들어서 등반을 시키려고 할 뿐이다.
혹독한 겨울이 당장 봄으로 바뀌지는 않더라도 산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줄 방법을 생각해줬으면 한다. 지원만 충분하다면 '필수의료'라는 산을 오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20년 뒤에는 필수의료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기사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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