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방의료 살리기에 연평균 9310억원 투자…무조건 병원 신설보단 공공의료 역할 재정립 필요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정부의 지역의료 살리기 기조에 맞춰 지방의료원 추진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각자 지역은 다르지만 의료원 설립 추진은 '지역 의료인프라 부실이 지방 소멸을 부추긴다'는 취지로 비슷하다. 특히 5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인 만큼, 이후 지방의료원 설립에 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각에선 공공병원을 새로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 5년간 4조7000억 투자, 지역 공공병원 20개소 이상 증축
6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방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은 최근 특히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2023년 올해의 어젠다로 '지역소멸과 공공의료 인프라'를 꼽았다.
공공병원 설립 찬성 측이 주장하는 데이터를 살펴보면 지역별로 응급·중증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만성질환의 효과적 관리 미흡으로 인한 불필요한 재입원율의 격차가 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환자사망비는 대구가 서울에 비해 1.2배 높고, 뇌혈관질환환자 사망비는 충북이 부산에 비해 1.5배 높다. 수도권과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는 필수의료를 자체적으로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료를 위해 타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른 사회적비용도 부가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에 따라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전국의 지방의료원은 35개로 평균 병상 수는 278병상에 그치고 300병상 미만 소규모 지방의료원이 대부분(27곳)이다.
복지부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세우고 2025년까지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적정 규모의 지역 공공병원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역 공공병원 20개소 이상이 신·증축될 예정으로 5년간 총재정 투자 규모만 4조7000억원에 달한다. 연 평균으로 따지면 9310억 원 수준이다.
인구 주는데 500병상 규모?…울산‧광주 사업 축소 가능성
정책 방향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의료기관 유치 경쟁도 치열해졌다. 특히 공공의료원이 없는 울산, 광주, 대전이 의료원 신설에 적극적이다.
다만 예비타당성 조사가 관건으로 대전은 예타가 면제됐지만 광주와 울산은 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한다. 예타 조사 결과는 5월 중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타당성조사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 3개 지표로 판단되는데 지난해 최초 평가에서 두 지역 모두 경제성 측면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울산의료원 설립에 드는 비용은 국비 1061억원, 지자체비 1746억원을 합쳐 총 2805억원이 소요된다. 500병상 규모로 설립이 예정돼 있는데 울산시 측은 지역에 공공의료원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기재부 재정사업평가분과위원회는 인구가 감소하는 있는 상황에서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크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역 시민단체도 광주의료원 타당성 재조사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광주의료원 설립 사업은 대규모 감염병 관리나 지역 보건사업 효과 등에서 발생하는 편익을 확대 적용하기로 한 첫 사례다.
광주시는 2026년까지 국비 718억 원과 시비 1477억 원 등 총 219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서구 상무지구 도심융합특구 내 2만5000㎡ 부지에 350병상 규모로 설립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광주의료원도 경제성 측면의 타당성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기존 350병상 규모로 설계될 예정이었던 사업 계획도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정적인 예타 결과가 예상되자 울산 북구를 지역기반으로 둔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적 편익만 따져도, 감염병 사태 때마다 돈으로 병상을 사는 대신 공공의료원 설립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공공의료원 확충은 국가 돈으로 병원 하나 짓자는 차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올바른 광주의료원 설립 시민운동본부도 3월 23일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신축 사업에 병상 공급과 이용률이라는 시장 논리를 적용해 사업을 축소시켜 국가중앙병원의 역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논리로 광주의료원 타당성 재조사 결과 또한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외 인천과 경기동북부권은 지방의료원 설립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천시는 부평구 산곡동 캠프마켓 A구역 내 약 4만㎡ 부지에 500병상 규모로 의사 108명, 간호사 489명 등 총 의료인력 900명 규모의 인천 제2의료원 설립을 추진할 예정이다.
부지매입비를 포함한 총 사업비는 4272억 원으로 추산되며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거쳐 4~6월 기재부 예타 대상사업 신청을 거칠 전망이다.
경기동북부권 공공의료원 설립은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유치 전쟁이 이미 시작된 상태다. 앞서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 1월 발표한 295개 공약에 '경기 동북부권 공공의료원 설립 추진'을 포함시켰다. 이에 현재 유치 의사를 밝힌 지자체는 가평과 남양주, 양평 등이다.
지방의료 살리기=공공병원 설립?…“기존 병원 적자 문제부터”
각 지자체 경쟁이 치열하지만 지방의료 살리기 정책이 너무 공공병원 신축에만 쏠려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병원만 늘린다고 해서 전국의 감염병과 특수 질환 대응을 다 수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재정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취지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전국에 공공병원을 늘린다고 감염병 사태에 대응하긴 힘들다. 중앙의료원의 현재 일반 진료 영역을 과감히 줄이고, 감염병 및 특수 질환의 연구와 공공의료 정책 개발을 위한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3차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종합병원을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어 의료 인프라가 충분한 서부산, 대전, 진주와 같은 곳에 단순히 공공병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방의료원을 신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이미 많은 민간의료기관들이 촘촘하게 의료 이용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존 지방의료원들도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적자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병원만 짓지 말고 기존 병원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하거나 공공병원 본연의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공공병원들의 적자 폭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2019년과 비교했을 때 2022년 10월 기준, 전체 공공병원 의료손익은 약 2.5배 악화돼 4070억76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태현 교수는 "공공병원의 실제 공익적 비용과 그에 따른 손실을 계측하는 연구를 보면 적정-필수의료와 시장실패 등 기능을 수행하기는데 드는 비용이 총 공공병원 손실의 60% 정도"라며 "그러나 연구는 실제 지방의료원의 공익적 기능 수행 수준은 낮은 것으로 평가됐고 상당수는 민간병원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유사한 결과에서도 고익적 손실은 59%, 일반 손실이 41%였다. 공공병원에 대한 공공적 역할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남도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대책위원장은 "공공병원 설립에 앞서 정확환 인구추계가 필요하고 병원이 설립되더라도 공공병원에서 급성기 환자를 진료하기 보단 중증외상 치료 등 민간병원이 할 수 없는 역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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