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처방 잘못되면 의사 책임?…대법원 "전화처방 이전에 대면진찰 하지 않은 의사 의료법 위반"
"전화처방은 정확한 환자 상태 파악 전제돼야"...의협 "의료인 책임소재 문제, 원격의료 반대 이유"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한해 한시적으로 전화상담·처방을 허용한 가운데, 전화처방에서 의료인의 책임 소재를 엄격하게 다룬 대법원 판례가 나와 주목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4일 대면진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환자에게 전화처방을 내린 의사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며, 무죄를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환송했다.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의사는 2011년 전화진찰 이전에 한번도 환자를 대면진료하지 않고 전화통화만으로 플루틴캡슐 등 전문의약품을 처방했다. 앞서 1,2심 판결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진 않았지만 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된 사건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당시 전화진찰이 허용되지 않았더라도 전화진찰의 위법성 여부를 따지는 것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판결의 핵심은 전화진찰과 대면진찰의 개념적 정의를 어떻게 보는지에 있었다. 대법원은 전화처방 자체는 직접 진찰로 볼 수 있지만, 책임소재를 엄격하게 봤다.
대법원은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여기서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진찰이 이뤄진 경우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했다면 직접 진찰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진찰이 치료에 선행하는 행위이며 현대 의학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어야 진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진찰이 전화 통화만으로 이뤄졌다면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진찰은 환자의 용태를 듣고 관찰해 병상과 병명을 규명하고 판단하는 것이다"라며 "진단방법은 문진, 시진, 청진, 타진, 촉진 등 각종 과학적 방법이 쓰이는데 전화통화만으로 진찰이 이뤄졌다면 최소한 전화진찰 이전에 대면진찰이 이뤄져야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가 전화통화를 통해 환자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로 처방이 이뤄졌다면 의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전화통화 당시 의사는 환자 특성 등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전화통화만으로 이뤄진 이번 처방은 환자 상태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결과적으로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는 법리적 오해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한편,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판례를 계기로 정부가 전화상담과 처방을 허용했더라도 책임소재 등을 보다 구체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코로나19에 한해 이뤄지고 있는 비대면진료의 책임소재를 대면진료와 동일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손영래 전략기획반장은 4월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화상진료와 전화상담, 전화처방 시 책임소재에 대해서는 대면진료 때 적용하고 있는 원칙들과 동일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한별 전성훈 변호사는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효율성을 따져 비대면진료를 허용했지만 의료의 책임소재가 문제가 됐을 때는 의사가 책임을 전적으로 지고 있는 불합리한 구조”라며 “이대로 상황이 지속되면 반쪽짜리 정책에 그칠 확률이 높다. 책임소재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들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김해영 법제이사는 “전화 처방은 임시적 조치이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책임소재 등의 문제가 충분히 붉어질 수 있다”라며 "정부가 전화처방을 발판으로 원격의료를 대폭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의협이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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