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남극으로 떠나는 의사 중에는 남극 세종기지나 장보고 과학기지가 아닌 얼어있는 바다를 항해하며 연구하는 쇄빙연구선(이하 쇄빙선) '아라온호'에서 근무하는 의사도 있다.
2009년 12월 정상운항을 시작한 아라온호의 연간 2회 운항일정을 따져보면 여기서 근무한 의사가 제법되지만, 월동의사회와 극지의학회에 가입한 쇄빙선 근무자는 단 한 명이다. 학회 활동을 통해 쇄빙선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그는, 3년 전 이례적으로 30대 여의사로서 근무한 터라 메디게이트뉴스에서 따로 만나봤다.
민선영 유방외과 전문의는 대학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하다 다른 일을 찾던 중 호기심과 더불어 새로운 탈출구로 남극을 선택했다.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고 인도 여행을 하는 등 오지를 탐험하는데 두려움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사이버대에서 심리학까지 전공한 그는 당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친구가 장난 삼아 보낸 쇄빙선 근무의사 모집 공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결국 지원했다.
당시 급하게 구직이 이뤄진 상황이라 출발하기 3주 정도를 남겨두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일단 가겠다고 답한 그는 당장 하던 일을 구만두고 가야하는 상황이라 후임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는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후임을 구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다행이 출발 전날 밤 후임이 채용됐는데, 후임을 구해야 하는 걱정에 식사도 못하던 그는 남극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새라곤 없이 출발 전날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 운명처럼 휘몰아치듯 떠났다.
그는 2014년 남극이 여름을 맞은 12월 뉴질랜드로 건너가 쇄빙선 대원이랑 합류해 이듬해 3월까지 아라온호 의무실에서 근무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1주일 정도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마치 물 속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듯할 정도로 물살이 강한 구간을 지나고 나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나오는데, 그 때 저 멀리 빙산이 보이는 걸 보고서야 남극에 왔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쇄빙선은 1년에 2번 남극과 북극이 각각 여름을 맞는 시기에 출발한다. 쇄빙선은 극지 연구수행과 더불어 장보고 기지와 뉴질랜드 사이를 오가며 물자를 보급하는데, 탑승인원은 선원 약 25명과 대원 약 45명을 더해 80명 내외다. 대원도 아니고 선원도 아닌 '의사'이다 보니 혼자만의 세계에 빠질 위험도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근무하는 동안 선원과 대원 사이를 잇는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민선영 전문의는 "약을 직접 방으로 배달하고 왕진을하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도왔다"며 "누구도 먼저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용기를 내어 나서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아라온호 탑승자들의 질환으로는 배멀미가 가장 많았고, 움직이는 상태에서 긴장하고 작업하다 보니 근육통과 근골계 질환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간혹 열상이 발생하거나 골절이 생기기도 하는데, 골절 환자의 경우는 신체검사(physical exam)만으로 골절 여부를 1주일간 정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어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여의사로서 어려운 점이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젊은 여의사가 왔다는 것 자체를 놀라워했는데, 저보다 오히려 편하게 복장을 하고 있던 선원들이 여의사가 나타나면 옷을 챙겨입느라 당황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민 전문의는 쇄빙선 운항과 관련해 혹시라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묻자 "극지 진료시스템은 쇄빙선 근무 의사와 남극 기지 의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라며 "약품이나 장비, 환자 진료정보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본래 천문학자 혹은 작가가 꿈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어릴 적 듣던 노래 '앞으로'처럼 앞으로 계속 가다보면 온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사막에 가서 은하수를 보는 것과 산티아고 걷기, 몽골리안 랠리, 그리고 쇄빙선 한 번 더 탑승 등을 버킷리스트에 담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비록 의과를 선택했지만, "이제는 의료봉사 분야의 행정가 혹은 호스피스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며 지금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의사의 역할을 하며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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