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1.22 19:23최종 업데이트 24.01.2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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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병상에 의료비 망국론(亡國論)까지 나왔던 ‘일본’ 지금은?

[인터뷰] 도쿄의대 하시모토 히데키 교수② “의료비 보다 간병비 부담이 문제...고령화→인구감소로 정책 초점"

도쿄의대 하시모토 히데키 교수.
 
하시모토 히데키 도쿄의대 교수∙일본의료경제학회 회장 인터뷰
① 의대정원 확대가 지방∙필수의료 살리는 해결책?
② 과잉 병상에 의료비 망국론까지 나왔던 일본 지금은?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도쿄의대 하시모토 히데키(橋本英樹) 교수(일본의료경제학회 회장)는 일본의 경우 수익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급성기 병상은 과잉인 반면 죽음을 앞둔 노인들을 받아줄 요양 병상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수가 조정으로 급성기 병상으로 쏠린 균형추를 잡아보려 하고 있지만, 정책이 성공적일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상황이다. 그 사이 노인세대 부모를 모셔야 하는 자녀들은 요양시설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설령 운 좋게 요양시설을 찾더라도 막대한 비용 부담이 뒤따른다.
 
하시모토 교수는 고령화로 의료비가 증가할 것이란 일반적 인식에 대해선 "노인들이 건강해지고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오히려 절대액이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대신 반드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인 간병 비용과 가족들의 부담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일본 정부의 시선은 이제 고령화를 넘어 인구 감소를 향해 있다"며 "의료 분야도 그에 발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전망했다.
 
섣불리 병상수 통제하려다 ‘대실패’기능별 병상 구분하고 수가로 병상수 조정
 
Q. 일본도 인구당 병상수가 한국과 비슷하게 많은 것으로 안다. 병상수의 증가는 곧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일본은 이와 관련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나.
 
일본의 경우 병상수가 의료비 절감에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이 제기된 게 1980년대부터다. 일본에서 의료법이 처음 만들어진 건 1950년경인데, 전쟁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으로 일본에 병원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병원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직접 지을 돈은 없으니 민간이 병원을 지을 수 있도록 권장했다.

대신 정부가 최소한의 병원 기준을 지켜달라고 하는 내용을 담은 게 당시 만들어진 의료법이다. 이후 30년간 의료법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자 점차 민간 병원이 늘면서 병상수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온 게 1980년대 ‘의료비 망국론’이다. 이대로 의료비 증가를 방치하다간 나라가 망한다는 거였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의대정원 축소와 병상수 감축이었다. 1985년 의료법 제1차 개정으로 도도부현별로 지역 의료계획을 세우고, 인구당 병상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지키도록 법적으로 제한했다. 기준치를 초과해 병상을 추가하려면 도도부현 지사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병상수만 제한하다 보니 수익 창출이 용이한 급성기 병상수만 크게 늘었다. 특히 법이 만들어지고 실제 시행하기까지 2년의 유예기간이 있었는데, 유예기간을 틈타 병원들이 병상을 계속 늘렸다.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병상을 보유하게 됐다.
 
후생노동성 입장에선 섣불리 정책을 내놨다가 역효과를 본 쓰라린 경험이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에는 병상수 자체를 억제하는 방식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다. 병원을 기능별로 구분하고, 진료수가 점수를 조정해 기능에 따른 병상수를 조정하는 식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이에 따라 병상수는 줄어들었고, 여기에 더해 2000년 이후 불황으로 폐업하는 병원이 늘어나면서 병상수가 자동으로 줄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병상수는 많은 게 사실이다. 특히 급성기 병상만 남아있어 기능별로 보면 오히려 균형이 악화하고 있다. 이에 2024년부터 시작되는 제8차 지역의료계획에서는 병원의 기능에 따른 배분을 더욱 강화하도록 했다.
 
Q. 기능별 병상 불균형에 대해 더 얘기해달라.
 
실제로 도쿄 특별구에는 요양 병상이 거의 없다. 고령이라 더 이상 고도의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환자인데도 사망할 때까지 간병해 줄 병원이 없다. 그래서 전철로 1시간 이상 떨어진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가족들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지만 기존에 있는 병원을 없앨 수도 없어서 고민이 많다. 병원의 기능에 따른 배분을 고려해 의사의 배치를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실제로 병원과 의사가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일 거란 보장은 없다.

외래환자 쏠림 꺼리는 日 대학병원들 “경영 효율성 떨어져”
 
Q. 한국 주요 대학병원들이 분원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와 의료진이 집중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 사립대병원은 분원이 꽤 있지만, 국립대병원은 분원을 갖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통합됐다. 도쿄대병원의 경우 원래 분원이 하나 있었는데, 1995년 무렵에 분원이 없어지고 현재 캠퍼스로 모두 통합됐다. 그 외에 도쿄에도 몇몇 대학병원들이 분원을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분원을 갖고 있다고 수익성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원의 적자를 본원이 보전해 주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집중 문제의 경우, 일본도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싶어하는 환자는 많다. 하지만 대학병원 입장에선 환자가 너무 많으면 대응이 불가능하다. 특히 외래환자가 많아지면 고도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진 확보가 어려워지고, 오히려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병원은 외래환자를 줄이려 한다.

현재 도쿄대병원의 하루 외래환자는 약 3500명 정도다. 가장 많을 때는 5000명을 넘은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의료진이 모두 외래환자를 감당해야 하기 떄문에 병동이 돌아가지 않는다. 의뢰를 받아 온 환자를 다시 돌려보내면서 외래 환자를 줄였고, 현재는 안정된 상태다.
 
또 대형병원의 경우 진료 수가 평가 항목에 의뢰 환자 비율이 25%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고, 초진 환자는 의뢰를 받지 않고 오면 추가로 선택진료비를 1300엔 정도 더 내도록 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대학병원에 환자가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환영하고 있다.
 
Q.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환자의 입원 일수도 압도적으로 길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재원일수는 급성기 병원의 경우 DPC(2003년 도입된 급성기 입원 의료를 대상으로 한 진료수가 포괄평가제도)를 도입한 결과, 지난 20년간 상당히 감소했다. 모든 병원이 환자 재원일수에 대해 공개하도록 하는 형식으로, 좋지 않은 수치가 나오면 병원 입장에서 의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불 제도 자체는 재원 일수를 줄인다고 인센티브를 더 주는식은 아니다. 이 제도의 효과는 재원일수 자체를 줄인 것보다도 병원별 격차를 줄인 데에 있다.

과거에는 전체 병원들의 재원일수 평균값이 지금보다 높았고, 병원별로도 차이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평균도 조금 낮아졌고 격차도 줄었다. 어떤 의미에선 표준화가 된 건데, 이게 DPC 제도의 가장 큰 효과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DPC 제도의 대상의 아닌 요양병원에서는 재원일수가 여전히 길다는 문제가 있다. 요양병원에 대해서는 재원일수가 180일을 넘으면 입원기본료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식의 강제적인 방법으로 대응 중이다.
 
사실 이건 임종 직전의 노인들이 입원 후 90일이 지나면 쫓겨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병원은 입원한 지 한 달 정도 지나면 90일까지만 입원할 수 있으니 다음에 어디로 갈지 결정하라고 환자 보호자들에게 재촉하기 시작한다. 요양시설 등이 있긴 하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 많아서 보호자들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Q. 관련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실제로 우리 어머니는 급성기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은 후 재발돼 다시 입원을 했다. 가망이 없다는 소견을 받고 전원이 필요했고, 어머니가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병원을 집 근처에서 찾았다. 당시 위암 수술에 총 300만엔(약 2700만원)정도가 들었는데, 어머니는 10% 부담에 고액요양비 제도(한달 내에 지출한 의료비의 본인부담금이 고액일 경우 일정 금액을 초과한 금액을 나중에 환급해 주는 제도)까지 적용받아서 최종적으로 지불한 비용은 15만엔(약 136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어머니의 여생을 위해 옮겼던 병원의 경우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해당 병원에 들어가서 한달 반 정도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보험이 적용된 부분은 기껏해야 2만엔(약 18만원)을 지불한 반면, 그 외에 비급여 비용으로 한 달에 25만엔(약 227만원)이 들어갔다. 그나마 이것도 저렴한 편이었다. 유명한 곳은 한 달에 50만엔(약 454만원) 정도를 내야 해서 일반인은 들어갈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일본은 노인이 사망하기 전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서비스가 많아 왜곡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비즈니스가 돼버렸는데, 보험 외 비용에 대해서는 공식적 통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런 식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서비스 내용이나 가격에 대해 분명 불만이 나올 것이다. 현재로선 새로운 비즈니스로 노인들이 죽어갈 곳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인구감소로 정책 초점 변화…의료도 병 치료 넘어 지역민 삶 지원
 
Q.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보험재정 위기 우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의외로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내 연구 결과에선 그렇다. 물론 고령화로 인해 의료비가 늘어날 것이란 얘기가 계속 나왔지만, 최근 정부의 정책도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고령화에 따라 늘어나는 사회보장 부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은 고령화 자체가 아니라 인구 감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로 방향이 바뀌었다. 특히 심각한 건 노동생산 연령층이 가장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 문제의 경우, 노인들이 건강해지고 있고 인구도 10년 정도 후면 정점에 도달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금액 자체는 늘어날 여지가 없다. 물론 이는 새로 도입되는 기술과 의약품을 제외했을 때일 뿐, 이를 어디까지 도입할 지는 또 다른 문제다. 반면 고령화로 인해 반드시 늘어나는 건 간병비용과 노인 가족의 부담이다. 의료의 문제라기보단 복지 시스템의 지속가능성 문제다. 단순히 노인만을 위한 게 아니라 노동생산 연령층이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까지 포함한 지역의 복지 문제로 주제가 바뀌고 있다.
 
Q. 그러면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라 의료계는 어떻게 변해가야 할까.
 
의료 측면에서는 지금처럼 고도의 의료를 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남겨두고, 어떻게 하면 지역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각 병원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일본의 경우 일부 중소 시립병원 경영자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지역의 복지 수요에 대응하는 기능을 어떻게 분담할 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특히 도쿄는 이런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카타시라는 베드타운은 도심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고, 땅값이 싸다는 이유로 1970~1980년대에 30~40대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지역이 고령화됐다. 미카타시에서 14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을 50년간 운영해온 병원장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젊은층 수요에 맞춘 의료를 제공했지만 점차 고령화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인구 감소에 따른 사회 복지 문제를 본인 병원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중소병원을 모아 함께 논의하려고 한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의료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각 지역 사람들의 삶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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