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감염자와 노출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던 6월 10일, 당시 최경환 총리 대행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치료병원과 노출자진료병원을 지역별로 지정하고 발표한다.
여기에 포함된 33개의 의료기관 중 약 80%는 공공병원이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발표 전부터 서울보라매병원은 메르스 환자에 착실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2009년도 핵심간부들이 6년 뒤인 지금도 간부를 맡고 계시죠.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대응을 한 면도 있고요."
서울보라매병원의 김병관 기획조절실장은 묵묵하게 발표를 시작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을 경험했던 대책위원장과 부원장은 지금까지 병원에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축적된 경험은 시행착오를 줄여줬다.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집중치료기관 선정
다시 6월 10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누적 감염 확진자가 122명, 격리대상자는 4,000명에 가까워지던 시기.
이날 최경환 총리대행의 발표 전까지 보라매병원은 음압병실 5개를 모두 1인실로 바꾸고, 전담팀을 꾸리고 있었다. 5명이 한팀이 된 5팀을 만든 후, 일반병동에서 간호사를 차출해 충원했다.
신종플루 때 1명뿐이었던 감염관리실 소속의 감염내과 전문의 역시 2명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
<출처 : YTN>
하지만 보라매병원은 뉴스를 통해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정부에서 6월 10일, 저희도 모르게 메르스 집중병원으로 발표한 거에요."
그는 황당하다는 어투로 밝혔다.
"서울시와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가 같이 새벽까지 회의했는데 보라매병원을 집중치료병원으로 하겠다고 발표를 한 겁니다."
당시 정부는 메르스 집중치료기관을 선정해 치료병원에서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를 담당하게 했는데, 서울보라매병원도 여기에 포함됐다.
치료병원에 2차 병원 역할을, 집중치료기관에 3차 병원 역할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국공립병원이 음압병상을 대개는 가지고 있는데…"
당사자들도 모르게 일을 진행한 것도 황당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근데 실제로는 여기(6월 10일 발표한 병원)에 음압병상이 없는 병원도 집중치료병원으로 지정되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음압병상 확인도 안 하고 지정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메르스 환자가 보라매병원에 남긴 것들
"발표를 하고 주위에서 보라매병원 이제 망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더라고요."
집중치료병원 지정 발표가 나가자 김 실장의 주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는 집에다가 메르스 환자 안 본다고 했거든요.
그런데도 아내가 자꾸 묻더라고요. 당신도 혹시 메르스 환자 보는 거 아니냐고…"
김 실장의 부인은 다음과 같은 부탁을 했다고 한다.
"혹시 환자를 보게 되면 호텔에서 좀 자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출처 : YTN>
발표 4일 후, 서울보라매병원은 137번 확진 환자가 진단 이전에 보호자로서 보라매병원 응급실을 90분가량 거친 사실이 밝혀지자 응급실을 폐쇄하기로 한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하게 하려고 응급실을 폐쇄했습니다. 하지만 폐쇄로 언론 보도가 나가니깐 환자들은 보라매병원 (전체) 폐쇄로 인식을 하더라고요."
그 당시 병원의 애환을 들어보자.
"폐쇄 보도 다음부터는 자장면 배달도 안 해주는 거에요. 조금 나은 업체는 배달은 해주는데 현관에 나와서 음식물을 받아가시면 안 되겠냐고…"
김병관 실장은 점심 먹으러 주변 음식점을 찾을 때마다 부담스러운 눈빛을 느껴야 했다고 한다.
"이게 환자나 일반 시민이 받아들이는 것은 엄청난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주거지에 보라매병원이 인접한 게 불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감염될까 봐 병원은 못 쫓아오고, 구청장을 방문해서 농성하더라고요."
결국, 구청장은 주민대표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메르스가 남긴 '경제적 유산' 또한 만만치 않다.
"저희가 매일 3,500명의 외래환자와 750명의 입원환자를 보는 병원인데, 5월 말부터 환자가 감소하다가 6월 5일 첫 메르스 환자를 받고 쭉 떨어졌다가, 집중치료병원 지정되면서 43%까지 떨어졌어요."
이 기간에 항암 예정자처럼 꼭 진료를 받아야 했던 환자들은 치료가 늦춰질 수밖에 없었고, 병원 치료 손실액도 컸다.
보라매병원은 최종적으로 약 50억 정도의 손실을 봤다.
"메르스 환자 10명을 진료했으니 1명당 5억 정도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김 실장은 유쾌하지 않은 얘기를 유쾌하게 이어갔다.
"하지만 이 기간에 보라매병원이 뉴스에 많이 보도됐으니깐, 홍보비로 50억 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공병원의 역할
영업이익 순위를 앞다투던, 소위 잘 나가던 병원들은 메르스 치료에 필요한 음압병상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아 망신당했다.
<출처 : 한국경제신문>
반면 공공병원은 좋지 않던 재정 상황에 더해 늘어난 피해액을 감수하고, 존재 이유를 드러냈다.
강동경희대병원의 투석환자가 메르스 확진을 받아 해당 간호사들이 자택 격리되자, 인력을 파견해 도움을 준 것은 보라매병원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김 실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삼성병원에서 계속 의료진들이 감염돼서 거꾸로 국립의료원과 보라매병원으로 환자들이 이송되었습니다.
더 큰 병원에서 작은 병원으로 거꾸로 (전원) 온다는 게, 이게 좀 뭔가 잘못된 상황인 거죠.”
국립중앙의료원 음압병실 <출처 : News1>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항상 나오는 얘기인데 공공의료병원이 전체의 5.7%밖에 안 되고 공공병상 비율도 낮습니다.
그런데 국가지정 음압병상은 거의 다 공공병원에 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1인당 GDP 2만 5천불이 넘는 OECD 국가가 음압병상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아 환자를 600Km나 이동시키는 상황을 만들었다.
<출처 : 조선일보>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번에도 공공병원 수가 많았다면 환자가 600Km를 떠도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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