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검체 채취시 전신보호복·가운 선택 가능" 설득 나섰지만...공보의들 "가운만의 문제가 아냐"
복지부·의학계 "가운도 비말 바이러스 오염 방지...WHO, CDC도 레벨D 수준 권고 안해"
공보의들 "현장 의료인들과 상의 없이 일방적인 지침, 선택 가능해도 공무원들 전신보호복 안줘"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채취 시 개인보호구 사용기준을 전신보호복에서 가운으로 변경한 것과 관련, 의료계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대한공중보건의사회협의회와 시도의사회 등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전신 가운 역시 바이러스 비말이 전신에 오염돼 간접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의 ‘일회용 방수성 긴팔 가운’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운 외에 레벨D 전신보호복도 계속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지침 개정은 현장의 위험수준에 맞는 적절한 개인보호구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무조건 가운만 입도록 강제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가 지침 개정의 근거로 밝힌 '코로나19 대응지침(6판)의 개인보호구 사용 안내표'에 따르면 역학조사와 이송, 구급차 소독, 사체 이송 시에는 전신보호복을 입도록 권장하고 있다.
다만 호흡기 검체 체취와 검체 취급을 포함한 의심환자 병실출입, 엑스레이 검사 등은 전신보호복과 긴팔 가운 중 하나를 선택해서 착용할 수 있다. 이 때 무조건적으로 레벨D 전신보호복을 지급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사의 판단에 따라 검체 채취 시에도 가운 대신 보호복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의 지침 개정은 일선 현장에서 검사가 지체된다는 이유에서 나왔다. 기존 레벨D 보호복을 입고 검체를 채취하면 검사가 끝나고 새 보호구로 갈아입는데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검사 당사자의 체력 소모도 크다는 민원이 있었다.
정부는 대구·경북 지역 지역에 환자가 집중되자 의료자원 부족을 염려하기도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보호구 소요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향후 확진자 수 등을 고려해 적절한 개인보호구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에 전문적인 의학적 소견을 권고한 것은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다. 위원회에 소속된 엄중식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책이사는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세계 어떤 지침에서도 코로나19 관련 개인보호구로 레벨D 보호복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 이사는 "비말 전파가 핵심인 코로나19는 피부 보호보다 호흡기와 점막 보호가 더 중요하다. 전신보호복과 가운의 문제가 아니라, 안면보호구나 고글, N95호흡기가 보호구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어 "레벨D 보호복은 제대로 훈련돼 있지 않다면 탈의하는 과정에서 오염의 우려가 있다. 차라리 일회용품이 효율성과 안전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보의들, 결정적 분노 이유 "현장 상황은 달라…원활한 소통 필수”
공보의들은 정부의 해명과 전문가들의 의학적 소견을 확인하고도 불만을 가라앉히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아무런 사전 소통과 안내 없이 '가운 사용을 권장한다'는 일방적인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공협은 자신들의 감염 우려는 물론 환자들에게 감염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수의 감염내과, 예방의학과, 호흡기내과 전문의 등에 의료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무증상자이거나 경증의 대부분 의심환자 접촉 시에는 복지부에서 권장한 가운 사용에 무리가 없지만, 유사 폐렴증상을 보이거나 확진자의 밀접접촉자 등과 접촉할 경우 레벨D 전신보호복을 착용하는 것이 안전하는 답변을 받았다.
대공협은 "정부가 별다른 단서 없이 가운 사용을 권장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현장의 혼란이 있었다. 두 가지 병행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의사의 소견에 따라 레벨D 보호복을 지자체에 요청해도 요구가 반려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무원들이 "복지부가 전신보호복이 필요 없다는데 왜 자꾸 요구하느냐"라고 핀잔을 준 사례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자체 공보의들은 단체로 검체 채취를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대구에 파견된 한 공보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장 근무 시 전신보호복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밝혀도 지급되지 않는 일들이 더러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중현 대공협 전 회장은 "이번 개인보호구 조치와 관련해 정부도 물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공보의를 비롯한 의료인들에게는 어떤 의견 청취도 없었다"며 "향후 코로나19 정책논의 과정에는 반드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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