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4.11 08:38최종 업데이트 21.04.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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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폐동맥 고혈압 환자 4500~6000명 추정…자가면역질환자라면 정확한 진단 필요

[질환 인식 캠페인]① 폐동맥 고혈압, 3년 생존율 54.3%로 예후 나빠…조기 진단과 적극적 치료 관심 필요

메디게이트뉴스 개원가 질환 인식 캠페인

현재 지구상에는 약 6000~8000개의 희귀질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새로운 희귀질환이 의학계에 계속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전체 질환의 약 6% 남짓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치료제가 있음에도 질환이 잘 알려지지 않아 유병률에 따른 예측 환자 수보다 치료받는 환자 수가 현저히 적거나, 진단이 어려워 정확한 유병률조차 파악되지 않는 질환도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환자들이 보다 빠르게 진단·치료를 받고 건강한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일선 진료현장에서 마주치기 드물고 환자가 내원했을 때 반드시 의심해야 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환자가 치료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호전이 없는 등 처음과는 다른 질환이 의심될 때 떠올릴 수 있는 질환을 알 수 있도록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① 폐동맥 고혈압: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
 
사진: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폐동맥 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희귀 질환으로, 진단 후 올바른 치료가 이어지지 않으면 평균 생존기간이 2~3년 정도로 나타난다.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지만, 질환 인지도가 낮아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 약 1500명 대비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숨겨진 환자는 약 4500~6000명으로 추정되며 국내 환자의 3년 생존율은 54.3%에  불과하다.
 
폐동맥 고혈압의 주요 증상은 호흡 곤란, 숨 가쁨 등으로 이러한 증상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어 조기에 질환을 인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폐동맥 고혈압은 진단까지 평균 1.5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동맥 고혈압은 조기에 발견해 올바른 치료가 이뤄진다면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일상생활도 가능하다. 최근 10여 년 동안 다양한 치료제 개발로 인해 약물 치료도 가능하며, 진단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기대 생존율이 7.6년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게이트뉴스는 폐동맥 고혈압 분야 석학인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폐동맥 고혈압의 임상적 특징, 치료 현황과 앞으로 국내 폐동맥 고혈압 치료 방향에 대해서 들어보고자 한다. 특히 1차 병원에서 질환을 의심하고 진단받을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보다 많은 숨겨진 폐동맥 환자들이 올바른 치료를 적재적소 받을 수 있는 방안 등을 알아봤다.
 
Q. 폐동맥 고혈압이란?
체내 순환계는 체순환계와 폐순환계로 나눌 수 있다. 폐동맥 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희귀 질환이다. 폐동맥 고혈압은 흔히 혈압계로 측정하는 일반적인 고혈압과 다르다. 폐순환계의 평균 수압은 동맥압 기준으로 평균 20mmHg 이하를 유지하는데, 우심도자술로 측정한 평균 폐동맥압이 25mmHg 이상, 폐동맥 쐐기압이 15mmHg 이하이면서 폐혈관저항이 3WU(Wood Unit)을 초과할 때 폐동맥 고혈압이라고 진단을 내린다.

Q. 폐동맥 고혈압의 주요 증상은?
폐와 심장을 연결하는 도로 역할을 하는 폐동맥에 이상이 생겨 증상이 나타나는데, 폐나 심장이 좋지 않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떠올리면 된다. 호흡곤란, 전신부종과 혈액공급량이 줄어들게 되면 나타나는 실신, 흉통 등이 일반적이다.

가장 흔한 증상은 호흡곤란으로, 폐동맥 고혈압 전체 증상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호흡곤란이라는 증상 자체가 심장, 폐, 콩팥 이상 혹은 심리적인 이유 등과 중복돼 나타나는 비특이적인 증상이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을 찾기 쉽지 않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절반은 돌연사로, 절반은 우심부전으로 사망한다는 수치가 있으며 이미 질환이 진행된 이후 심각한 상태에서 발견되면 치료 또한 늦어지게 때문에 그만큼 생존율이 낮다.

Q. 폐동맥 고혈압의 국내 유병률과 치료현황은?
국내 폐동맥 고혈압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는 2019년 1713명으로, 2015년 1413명 대비 1.2배 증가했으며, 발생률은 인구 100만명당 4.84명이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성별 비율은 여자(69%)가 남성(31%)보다 많고, 그 중에서도 40대 이상 여성 환자는 총 905명으로 전체 환자의 약 52%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사진: 국내 폐동맥고혈압 현황.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는 폐고혈압 환자의 약 2~3% 정도이나 실제 치료 환자는 추정 환자 대비 3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아직 진단받지 못한 숨겨진 폐동맥 고혈압 환자는 약 4500~6000명으로 추정된다. 또한, 현재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생존율은 3년 기준으로 54.3%에 불과하다.


주로 40대 후반 여성에서 많이 발생…최근 고령 남성 환자 늘어

장 교수는 "폐고혈압은 자체는 굉장히 흔한 질환이다"면서 "폐정맥, 폐모세혈관의 혈압이 증가한다면 폐고혈압으로 진단을 내린다. 폐정맥, 폐모세혈관쪽의 압력이 높아져 폐고혈압이 생기는 것은 폐정맥과 연결된 좌심실질환, 심장판막질환, 허혈성 심장질환 등에 의한 것이다. 좌심실에 생기는 심장병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폐고혈압의 발병 빈도가 높다. 또한 폐모세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폐심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에 의해 조직이 파괴돼 폐고혈압의 발병 빈도가 높다"고 말했다.

반면 폐동맥 고혈압은 전체 폐고혈압 중에서 발병 빈도가 제일 낮다. 장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의 발생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선천성 심장병(심장질환)이다. 국내에서는 선천성 심장병 발병률이 줄어들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후진국이나 중진국은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어도 산전관리가 안되고 치료적 유산을 하는 경우가 드물어 선천성 심장병 발병율이 높다. 두 번째로 전신홍반성루푸스, 전신경화증, 류마티스 관절염 등 자가면역 질환으로 폐혈관이 좁아져 혈압이 상승해 이차성 폐동맥 고혈압이 발병한다. 마지막으로 원인미상으로 폐동맥 고혈압이 생기는 경우가 약 1/3정도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면서, 선천성 심장병에 따른 폐동맥 고혈압 발병 비율이 줄었으며 '선천성 심장질환:자가면역질환:원인미상=4:4:2'의 비율로 폐동맥 고혈압이 발병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폐동맥 고혈압은 주로 40대 후반 여성에서 호발하며, 이들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별과 연령대 상관없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변해가고 있다.

장 교수는 "자가면역질환은 여성 환자 수가 많고, 원인 미상의 특발성 폐동맥 고혈압도 여성 환자가 많은 편이다. 예전에는 폐동맥 고혈압 발병 성비가 여성:남성=2:1 정도 였으며, 새로 발병하는 환자 비율도 젊은 여성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최근에는 고령 남성 환자도 늘어남에 따라 여성 성비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환자가 좀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정확한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폐동맥 고혈압 발병 원인에 성 호르몬이 일정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부모님이 폐동맥 고혈압 있거나 본인이 자가면역질환자라면 질환 스크리닝 해야

장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 진단에 대해 "폐순환계 압력이 높아지면, 폐고혈압인지 폐동맥 고혈압인지를 먼저 확인한다. 폐동맥 고혈압일 경우 발병 원인을 찾는다"면서 "폐동맥 고혈압을 스크리닝(screening)하는 방법으로는 심장초음파 검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심장 초음파는 폐동맥 수축기 압력과 좌, 우측 심장의 기능 및 상태를 비침습적으로 측정해 폐동맥 고혈압을 진단한다. 이외에도 6분 보행 검사, 폐기능검사, CT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우심도자술로 측정한 평균 폐동맥압이 25mmHg 이상, 폐동맥 쐐기압이 15mmHg 이하이면서 폐혈관 저항이 3WU(Wood Unit)을 초과하면 폐동맥 고혈압을 확진한다. 마지막으로 폐동맥 고혈압을 진단 내린 후, 앞서 말한 세가지 주요 원인 중 어떠한 원인인지를 알기 위해 여러가지 CT, MRI, 혈액 검사 등의 검사를 시행한다.

장 교수는 "부모님이 폐동맥 고혈압이 있거나 혹은 본인이 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어 이차성 폐동맥 고혈압이 발병할 수 있는 고위험군 환자라면, 증상의 유무에 관계없이 질환 스크리닝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국내 이차성 폐동맥 고혈압 치료 환자 수는 2014년 702명에서 2019년 1290명으로 증가해 불과 5년 만에 1.8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전신경화증, 특히 침범 부위가 제한된 변이형에서 폐동맥 고혈압이 주로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전신홍반루푸스가 더 흔한 원인이다.

장 교수는 "전신경화증은 서양에서의 발병률이 더 높고, 루푸스는 아시아에서의 발병률이 더 높다. 그렇다 보니 전신경화증에 대한 비율이 연구가 더 많이 됐으며, 루푸스는 정확히 연구된 수치는 아직 없다. 전신경화증 환자에서 폐동맥 고혈압 발병 비율은 약 10%로 추정하고 있으며, 루푸스는 전신경화증 비율보다는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08년 9월부터 2011년 12월까지의 KORPAH 레지스트리 분석에 따르면 폐동맥 고혈압 발병 원인이 자가면역질환인 환자는 다른 폐동맥 고혈압 환자보다 사망률 (18.8%)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특발성 폐동맥 고혈압 사망률 8.1% vs. 선천성 심장 질환에 의한 폐동맥 고혈압 사망률 3.9%). 특히, 전신경화증으로 인한 이차성 폐동맥 고혈압 환자에서의 1년 생존율은 82%, 3년 생존율은 56%로 다른 원인으로 폐동맥 고혈압이 발병한 환자보다 생존율이 매우 낮았다.

누적 생존율은 선천성 심장질환에 의한 폐동맥 고혈압 또는 특발성 폐동맥 고혈압 환자보다 자가면역질환에 의한 폐동맥 고혈압 환자에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면역질환에 의한 이차성 폐동맥 고혈압이 발병하면 예후는 훨씬 심각하다. 따라서, 전신홍반성루푸스, 전신경화증 등 자가면역질환 환자라면 반드시 폐동맥 고혈압이 발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장 교수는 "'나의 조직을 남의 조직으로 인식해서 염증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자가면역질환인데, 자가면역질환은 전신질환이기 때문에 염증 반응이 폐혈관까지 침범해 발생하는 것이 폐동맥 고혈압이다"면서 "루푸스와 전신경화증에서 어떤 환자가 폐동맥 고혈압 발병률이 높은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예측 지표들이 있지만, 그런 지표의 신뢰도가 높지는 않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루푸스와 전신경화증 환자라면,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폐동맥 고혈압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더불어 폐동맥 고혈압은 유전성이 강해 환자 가족의 60~80%가 잠재적 환자로 분류된다. 따라서 가족 중에 폐동맥 고혈압 환자가 있었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권장한다.


현재 약제론 혈관 좁아지는 과정 되돌릴 수 없어…질환 초기부터 좁아지는 것 지연시켜야

장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의 치료는 단순히 환자가 일상생활을 복귀해 케어를 지속하는 것이 아닌,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처럼 질환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 "폐동맥 고혈압의 치료 목표는 호흡곤란, 실신, 흉통 등의 증상을 완화시켜 환자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기준은 6분 보행 검사 시, 450m 이상을 6분동안 걷을 수 있을 정도 등으로 판단한다. 또 뉴욕심장협회(New York Heart Association, NYHA)의 폐동맥 고혈압 기능분류(functional class) 기준으로 본다면, 기능분류 1~2단계 정도까지 관리한다는 정량적 지표를 내세우기도 한다. 기능분류 1~2단계는 일상생활에서 가벼운 호흡곤란이나 호흡곤란이 없는 정도를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장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 질환 진행 과정을 세 파트로 나눴을 때, 첫 단계는 혈관이 좁아지기 시작했지만 환자가 버틸 수 있는 단계다. 두번째 단계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단계이며, 마지막 단계는 이미 우심실이 한계점에 도달해 기능이 떨어지고, 모든 증상들이 나타나는 시기다. 사실 폐동맥 고혈압 첫 단계를 지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땐 이미 늦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환자의 치료는 진행돼야 한다. 폐동맥 고혈압은 당뇨 보다도 예후가 좋지 않은 무서운 질환이라는 걸 생각하고 조기부터 치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예를 들어, 정원에 물을 줄 때 파이프를 좁게 잡으면 잡을수록 물줄기 측 수압이 높아지는 것처럼 혈관의 압력이 올라가는 것도 이와 똑같다. 폐혈관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면, 혈관이 좁아지면서 혈관 단면의 총합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압력은 더 높아진다. 혈관 단면의 총합이 줄어들면, 심장이 어느 정도까지는 열심히 펌핑하지만 압력이 더 높아지면 결국 기능이 떨어지고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폐동맥 고혈압 치료 목표는 폐동맥 혈관이 좁아짐에 따라 우심실 과부하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정 수준 이상 혈관이 좁아지거나 더 나아가 우심실에 과부하가 발생한다면 질환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다. 현재 시점에 나와있는 모든 약제들은 혈관이 좁아지는 과정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지연시킬 수만 있다. 따라서 질환이 진행되기 전, 질환 초기부터 이를 혈관이 좁아지는 것을 지연시키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고 했다.

장 교수는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 환자들이 조기 스크리닝을 하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어 운동할 때 숨이 많이 차오르는 등의 증상이 있음에도, 그런 증상들을 무시하거나 혹은 다른 질환으로 오인해 다른 약을 먹으면서 지켜보는 과정이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혹은 폐동맥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가이드라인에 권고된 표준치료에 대해 국내에서는 다소 소극적으로 치료를 진행하기 때문에 환자 예후가 좋아지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폐동맥 고혈압은 2제 혹은 3제 병용요법을 시행해 일상생활로 복귀 가능한 수준인 저위험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소극적인 치료가 이뤄진다. 하물며 일반적인 고혈압, 당뇨 조절도 목표치 대비 소극적 치료를 진행한다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폐동맥 고혈압 치료도 예외가 아니다"면서 "그럼에도 폐동맥 고혈압의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다른 질병과는 예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소극적으로 치료해도 10~15년이 지나서야 합병증이 발병하곤 하지만, 폐동맥 고혈압은 소극적으로 치료하면 1~2년 뒤에는 사망에 이르고 만다"고 지적했다.


병용요법 적극 활용하면 기대 생존기간 7.6년까지 증가하지만 국내 생존율은 현저히 낮아

그렇다면 이렇게 소극적 치료가 진행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장 교수는 단순히 국내에서 쓸 수 있는 약제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치료를 할 수 있는 무기는 충분하지만, 병용 치료 관련해서는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에서 현재까지 승인된 치료제로는 엔도텔린수용체 길항제(Endothelin Receptor Antagonist, ERA)와 PDE5i(Phosphodiesterase 5 inhibitor) 계열이 있고, 더 구체적으로 나이트릭 옥사이드(nitric oxide)와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계열이 있다"면서 "예전에는 국내에 각 계열별 모든 치료제 옵션이 없었다. 세 가지 계열의 약제를 모두 병용치료 하고 싶은데, 두 가지 계열밖에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최근 몇 년 사이 모든 계열의 약제를 다 사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국제 기준으로 봤을 때, 환자가 생활에 복귀해서도 여전히 숨이 차다면 한 개의 치료제만 사용하다가, 하나를 더 추가하거나 두 개의 치료제를 사용하다 하나를 더 추가해 세 개의 치료제를 쓰는 등 치료제 사용이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고가 약제이다 보니, 2제 병용에 대한 기준이 까다롭고 3제 병용에 대한 기준은 더 까다롭기 때문에 병용 치료를 하기 어렵다. 2제 병용은 할 수는 있지만, 우선 처음에 한 개의 약제를 사용해보고, 환자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3달 뒤에 평가 후 약제를 추가해 사용하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처음부터 2제 혹은 3제 병용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어려움이 많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당뇨와 고혈압이 초기부터 적극적 치료를 통해 수치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표준 치료법이 된 것처럼, 폐동맥 고혈압도 예전에는 순차 병용(sequential combination) 이 치료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초기병용(upfront combination)하는 것이 치료의 기준이 됐다. 하지만 국내 보험급여 기준 자체가 전향적으로 개정되지 않다 보니,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사진: 폐동맥고혈압 예후. 

현재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생존율은 3년 기준으로 54.3%에 불과한 매우 예후가 불량한 질환이다. 폐동맥 고혈압 진단 후 최신 치료제 병용요법을 적극 활용하면 기대 생존기간이 7.6년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해외와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3년 평균 생존율을 비교한 연구에서 국내 생존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질환의 조기 발견과 적극적인 치료에서 오는 차이로 분석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 한국에서 진행된 등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기진단 환자는 생존율이 진단이 늦은 환자 대비 약 3배가량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형 지침 제정으로 국내 보험급여 기준 개선 및 폐 이식 경각심 증가 기대
 
지난해 폐동맥 고혈압 한국형 진료지침을 제정했고, 장 교수도 여기에 참여했다. 장 교수는 지침을 제정한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국내 보험급여 가이드라인 기준을 재정비하기 위함이다.

장 교수는 "희귀질환은 단지 의학적 부분의 노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희귀질환의 치료성적이 올라가려면 사회 제반의 여건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 해외에서는 2제, 3제 초기병용(upfront combination)을 진행함으로써 폐동맥 고혈압의 예후 경과가 좋다는 것이 증명됐다. 최근 폐동맥 고혈압 치료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5년 전 보험급여 가이드라인 기준이다. 보험회사와 건강보험공단 입장에서는 치료 기준을 바꾸는 순간 비용적인 부담이 더 들기 때문에, 오히려 기준을 소극적으로 바꾼다"고 말했다.

그는 "폐동맥 고혈압 한국형 진료지침을 만든 목적 자체는 국내 폐동맥 고혈압 전문가들과 단체가 의견을 취합하고, 합의된 기준이라고 제시할 수 있는 컨센서스 포지셔닝 페이퍼(consensus positioning paper)를 만들기 위함이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업자를 설득할 수 있는 자료로 이번 진료지침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폐동맥 고혈압 치료 관련 '폐 이식'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진료지침을 제정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치료 환경에서 부족한 점은 바로 '이식'이다. 폐동맥 고혈압 1단계, 2단계, 3단계를 거쳐 폐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증자가 없다는 점이다. 기증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기증자가 증가하기 위해선 환자나 의료진이 아닌 사회적으로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 진료 지침을 통해, '폐 이식을 하면 예후가 좋아지고 사망 위험이 높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진료지침을 통해 의료진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해 기증 받을 수 있는 리스트에 미리 등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증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보통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은 2년~2년 반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렇다면 2년 반 뒤에 폐 이식이 필요한 폐동맥 고혈압 환자라면 이 부분을 예측하고 리스트에 미리 등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대부분 의료진이 2~3년 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것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하기가 어렵다. 결국 환자의 상태가 악화돼 생존율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을 때, 기증 리스트에 등록을 하니까,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이처럼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형 진료지침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장 교수는 "희귀질환은 보통 일반적 질환 그리고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암 등의 다빈도 질환과는 의료인의 역할이 조금 다른 것 같다. 환자가 내원해서 숨이 차다는 증상을 듣고, 약을 처방하는 것만으로는 환자의 예후가 나아지지 않는다. 약이 비싸서 쓰지 못하는 것부터 시작해, 급여 기준이 바뀌지 않는 점 혹은 기증자가 없거나 희귀질환 환자들에 부족한 지원 등 단순한 치료 이전에 뒷받침돼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이런 부분들이 뒷받침이 되려면 의료진은 물론 비영리단체(NGO)와 환자,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사람(Caregiver)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이들이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희귀질환을 다루는 의료진이라면, 단순히 병원 안에 있는 것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장기기증과 관련해 장기기증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열심히 하자고 소리를 내거나, 급여 기준을 바꾸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자료를 제출하거나, 환자단체와 비영리단체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면 그런 단체를 만들거나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단순히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필요하다면 병원 밖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희귀질환 치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도영 기자 (dypark@medigatenews.com)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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