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아프면 장내미생물도 아프다…뇌-장-미생물 축(Brain-Gut-Microbiota axis) 이론
[칼럼] 김용성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교수·DCN바이오 부사장
[메디게이트뉴스] 1951년 미국 코넬대학 뉴욕병원의 내시경실에서는 직장경 검사를 받던 한 젊은 남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앨미(Almy) 교수에게 물었다. “수술이 가능할까요?” 직장경으로 관찰된 이 남성의 대장은 심하게 수축하고 있었고 점막은 충혈돼 있었다.
그는 건강한 22세의 의과대학 4학년 남학생으로 직장경 선별 검사가 필요한 임상연구에 참여하기로 하고 선별검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직장경 검사를 시작하고 처음 10분간 관찰하는 동안에는 대장의 움직임은 매우 이완돼 있었고 혈관 충혈도 없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자 누군가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앗! 교수님. 저게 뭘까요?"
"음, 모양이 좀 수상하군. 조직검사를 해봐야겠네. 생검겸자를 준비해줘."
그러자 보조자들이 기구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어수선하게 조직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동안 실험 대상자는 점점 불안감이 증가하면서 직장경으로 관찰하고 있던 대장은 수축과 점막 혈관 충혈이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 '암일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에 너무 불안해진 학생은 그 병변이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지 물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앨미 교수가 계획한 실험과정이었고 그는 이 실험을 통해 피험자가 불안감을 느낄때 대장의 생리적 기능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앨미 교수는 피험자의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보조자들과 미리 생검을 하는 것처럼 연기를 했던 것이다. 앨미 교수는 학생에게 지금까지 상황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설명하고 실험에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동안 심하게 수축하던 학생의 대장은 즉시 조용해졌고 점막 혈관 충혈도 정상이 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그림1)
앨미 교수의 유명한 이 실험은 대장에 직접적인 손상이나 조작이 없이 정신적 불안감만 유발해도 직접적으로 대장 생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게 뇌 기능의 변화가 장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뇌-장축(Brain-Gut axis) 이론이라고 하는데, 아마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증례도 자세히 기술돼 있다.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뇌기능의 변화가 대장운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연구에서 이런 영향이 정상인보다 환자들에게 더욱 과장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뇌 기능의 변화'는 불안감이나 긴장, 그리고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적 변화를 의미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장관 기능이 변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속담이 있는 것처럼 이런 현상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었다. 왜 사돈이 땅을 샀는데 머리가 안아프고 배가 아픈지에 대해서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뇌-장축 이론이 제시되면서 설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코르티코트로핀분비호르몬(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 CRH)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CRH는 뇌하수체 전엽을 자극해 부신피질자극호르몬(adrenocorticotropic hormone, ACTH)을 분비하게 하고, ACTH는 최종적으로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솔을 분비하게 하는 HPA 축을 구성한다.
학생 때 배웠던 이런 전통적인 호르몬으로써의 역할 외에 CRH는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밝혀졌고, 뇌의 CRH 증가는 자율신경계 활동을 통해서 앨미 교수가 관찰했던 위장관 운동성에 영향을 준다.
환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흔히 소화가 안되고 명치가 막힌다는 증상을 느끼거나 설사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스트레스 반응으로 CRH가 분비되고 뇌의 CRH 2 수용체가 자극되면 위 운동을 억제시키고 CRH 1 수용체가 자극되면 대장의 운동성과 분비가 증가된다.
최근 장내미생물총이 하나의 신체 장기처럼 인간의 건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 기능 뿐만 아니라 장내에 살고 있는 미생물총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동물실험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증명됐다.
아주 성질이 사나운 쥐를 얌전한 쥐와 한 케이지 안에 넣어놓으면 싸우면서 얌전한 쥐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Social distruption stress'라고 하는 이 실험은 사회적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 영향을 확인하는 실험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받지 않은 정상쥐에 비해 Bacteroides가 감소하고 Clostridium이 증가하는 장내세균총의 변화가 생기고 동시에 혈중에서 염증매개물질인 IL-6가 증가한다. 이 혈중 IL-6의 증가는 장내세균중 Coprococcus, seudobutyrivibrio, 그리고 Dorea 속의 변화와 연관됐다. 흥미롭게도 항생제를 미리 투여해 장내 세균을 줄인 쥐의 경우 사회적 스트레스에 노출시키더라도 혈중 염증반응이 증가하지 않는다.
인간의 경우는 이렇게 일부러 싸움을 붙여 괴롭히는 실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경우 어떻게 장내미생물총이 변하는지 관찰하는 연구를 하게 된다.
호주 스윈번 공과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가 적은 시기인 학기초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학기 중간의 시험기간 5일동안 분변검사를 해서 장내매생물총을 비교했던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학생들 분변에서 검출된 유산균의 양은 학기 초, 그리고 시험시작 전날에 비해 시험을 보는 5일 내내 감소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시험이라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장내미생물총에 영향을 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고3 학생들은 다른 집단과 전혀 다른 장내미생물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하는 추정도 해볼 수 있겠다.
물론 인간의 연구는 동물실험과는 달리 변수가 많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특히 스트레스로 인해 먹는 것이 변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시험기간에도 커피를 많이 마시거나 식사를 거르는 등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장내미생물총에 대한 영향은 스트레스 이외에 식이나 운동의 변화가 중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내시경이나 혈액 검사에 이상은 없지만 반복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과민성장증후군과 같은 기능성질환 환자들을 치료할 때 뇌-장축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뇌의 기능이 위장기능 뿐만 아니라 장내미생물총에 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진 지금은 뇌-장축을 넘어서 뇌-장-미생물 축의 개념(그림2)으로 진료를 한다면 최선의 치료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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