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8.07.13 05:51최종 업데이트 18.07.1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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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에서 보석 줍기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 테라퓨틱스 상임고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데이터(data)는 데이터일 뿐이다. 데이터는 좌도 우도 아니고 중립(neutral)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보석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필자는 1982년 여름 위스콘신 약학대학에서 아라키돈산 대사물(Arachidonic acid metabolites, AM)으로 박사학위(Ph. D.)를 마쳤다. 

당시 졸업논문의 주제는 새로운 타겟으로 부상하던 류코트리엔(leukotriene) 생합성이었고 두 제약사에서 인터뷰를 마쳤으나 오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침 맥카들 암연구소(McArdle Laboratory for Cancer Research)의 뮬러 교수(Dr. Mueller)가 ‘AM’ 과제를 진행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나를 간절히 원하셨다. 두 아이들과 새로운 학교에 가서 얻을 적응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디슨(Madison)에 남아 포닥(post doc)을 해 다음 구직을 위한 이력을 채우기로 결정했다. 

'오메가6(ω-6)' 지방산인 아라키돈산을 림프구(lymphocytes)에 처리한 후(“ω-3”를 일반인도 인지하기에 이렇게 표시) '12-O-테트라데커노일포르볼(Tetradecanoylphorbol)-13-아세트산염(acetate)'(TPA)로 자극하면 두 가지 아라키돈산 대사물이 생긴다. 이 대사물이 어떤 물질인가가 연구과제의 주제였다. 이 과제를 시작한 스티브 라이튼 교수(Dr. Steve Wrighton)와 함께 “Demonstration of two unique metabolites of arachidonic acid from phorbol ester-stimulated bovine lymphocytes”(Carcinogenesis, Volume 4, 1 October 1983, Pages 1247~1251) 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스티브가 연구실을 떠나고 나 혼자 실험을 재현할 때 문제가 생겼다. 나 혼자도 그렇게 재현이 잘 되던 대사물이 이번에는 아예 나오지가 않았다. 재현 안 되는 연구과제라고 보고하고 쓰레기처럼 버려야 하나?

왜 그럴까?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두 실험은 무엇이 차이가 났을까? 탐정처럼 조사에 착수했다. 실험에 항상 사용하던 [3H]아라키돈산을 뉴잉글랜드원자력(New England Nuclear, NEN)에서 구입하지 않고 아머샴(Amersham)에서 구입한 것이 다른 점이었다. 마침 NEN의 스톡(stock)이 떨어져서 공급자를 바꾼 것이었다. 두 가지 제품을 자세히 비교해 보았다. 별 차이가 없었지만 NEN은 에탄올 솔루션(ethanol solution)으로 공급하고 아머샴은 디메틸술폴시드(Dimethyl sulfoxide, DMSO) 솔루션으로 공급하는 차이였다. 결론적으로 에탄올을 함유하는 [3H]아라키돈산을 사용하였을 때는 대사물이 생기고 에탄올이 없는 [3H]아라키돈산을 사용하면 대사물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가 관찰했던 두 개의 대사물은 에탄올과 아라키돈산이 공통분모였다. 당시에는 ‘구글링(Googling)’이 없었다. 보석을 찾기 위해 논문을 뒤졌다. 마침 'Alling C, Gustavsson L, Anggard E. An abnormal phospholipid in rat organs after ethanol treatment’라는 논문을 찾았다. 스웨덴 그룹은 에탄올의 남용, 술이 뇌에 미치는 위험성을 연구하는 팀이었다. 그들이 발견한 비정상적인 인지질은 바로 포스파티딜에탄올(Phosphatidylethanol, PEt)이었다. 

인지질분해효소D(PhospholipaseD, PLD)는 세포막에 존재하는 글리세롤인지질(glycerophospholipid)의 다이에스테르 단자(terminal diester) 결합을 가수분해(hydrolysis) 해서 선두그룹(head group)을 포스파티딘산(phosphatidic acid, PA)으로 분해하는 효소이다. 반응 용액 내에 짧은 지방족 알코올(aliphatic alcohol), 예를 들어 에탄올이 존재하면 트랜스포스파티딜화(Transphosphatidylation)에 의해 PEt가 만들어지고 메탄올이 존재하면 PMt가 만들어진다. 

이 Transphosphatidylation은 PLD만의 고유의 성질이기에 PLD 활성화의 표지로 사용되고 있다. 포유 동물에서 PLD의 활성이 가장 많은 조직이 뇌와 허파이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두 개의 대사체는 쉽게 규명될 수 있었다. 대사체의 구성 지질이 다른 PEt라고 밝힐 수 있었다. “Pai, J.-K., Liebl, E. C., Tettenborn, C. S., Ikegwuonu, F. I. and Mueller, G. C., 12-O-Tetradecanoylphorbol-13-acetate Activates the Synthesis of Phosphatidylethanol in Animal Cells Exposd to Ethanol.  Carcinogenesis, 8, 173(1987).” 물론 이 논문은 필자가 위스콘신을 떠난 후에 출간됐지만 3년 6개월의 포닥 생활은 겨우 두 개의 ‘암발생(Carcinogenesis)’ 논문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차전령물질(Second Messenger)은 세포 표면의 수용체(receptor)에 받은 시그널(signals) 즉, 단백질 호르몬, 성장호르몬 등의 신호를 세포질이나 핵의 타겟에 전달하는 중계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사실 PLC의 활성과 PLD 활성은 구분하기가 힘들다. 두 효소는 글리세롤인지질의 인(phosphate)의 오른쪽과 왼쪽을 자르는 효소이고 두 효소 모두 ‘디아실(Diacylglycerol)’이라는 중요한 이차전령물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는 데이터의 상황에서 어떤 보석을 주웠나? ‘Transphosphatidylation’은 PLD만의 고유의 성질이기에 PLC의 활성과 구분하기 위한 PLD 활성화의 표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첫째 보석을 건지게 됐다.

두 개의 대사체를 얻기 위해 TPA를 사용했다. 대부분의 암은 클론 기원(clonal origin)이며 많은 수의 유전적인 변이를 통해 결함을 가진 세포가 주위 세포군들 중에서 여러 차례의 선택과정을 거쳐서 발병한다. 이 과정을 단순화시키면 개시(initiation), 활동(promotion), 진행(progression)으로 요약된다. 암의 활동(promotion)을 일으키는 TPA의 수용체가 바로 프로틴 키나아제 C(Protein Kinase C, PKC)라는 것이 그 즈음에 알려지게 됐다. ‘디아글리세롤(Diacylglycerol)’이라는 중요한 매개체(mediator)가 PKC를 활성화한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게 됐다. 두개의 대사체를 얻는 과정에서 PKC와 PLD가 연결될 것이라는 둘째 보석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둘 수 있었다. 

쓰레기처럼 버리는 데이터에서 보석 줍기를 끝낸 나는 8년 8개월의 위스콘신 생활을 접고 뉴저지 셰링 플라우(Schering-Plough)에서 근무하기 위해 1986년 2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매디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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