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낙상 책임 소송, 후진적인 의료현실
지난 2017년 12월, 강북삼성병원에서 한 환자가 급성 담낭염으로 수술을 받은 후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병원은 환자가 낙상 위험이 높다는 것을 예상하고 매뉴얼에 따라 ‘낙상 고위험관리군 환자’로 평가 후 낙상사고 위험 요인 표식을 붙이고 침대 높이를 낮췄으며, 침대 바퀴를 고정했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도 여러 차례 낙상방지 교육을 했다.
하지만 이런 병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결국 침대에서 떨어져 뇌손상을 입게 됐다.
이 사고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병원을 상대로 낙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뇌손상 치료비 분담에 대한 소송을 진행했다. 6월 10일 서울중앙지법은 병원의 책임을 상당 부분 인정해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약물 복용이나 고령, 수술, 감염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환자가 특정 기간 동안 의식을 잃는 것을 '섬망'이라고 한다. 이는 큰 병원, 특히 중환자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섬망 상태가 되면 환자는 의식을 잃고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기가 어딘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문제는 섬망의 원인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환자가 섬망 상태에 빠지면 자신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낙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낙상을 대비하기 위해 병원은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다. 이 조치들이 앞서 강북삼성병원이 취한 모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낙상은 발생했고, 환자는 큰 손상을 입게 됐다.
여기서 이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이 나온다.
병원에 소송을 진행한 주체가 환자의 보호자들이 아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호자들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나서서 병원에 낙상의 책임을 끝까지 물었다. 국민들의 세금을 한푼이라도 절약하고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이 사고에서 병원의 과실과 책임이 있다면, 향후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추가 대책이 있어야 옳다. 환자의 낙상을 예방하기 위해서 강북삼성병원은 어떤 조치를 추가할 수 있을까.
첫 번째, 가장 좋은 방법은 1:1로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모든 환자 옆에 한명씩 붙어 24시간 동안 환자를 감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시급으로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도 월 600만원 이상의 인건비가 추가된다. 이 비용을 모든 환자가 감당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대부분의 낙상이 침대에서 떨어져 발생하는 것이므로, 침대를 치우고 군대 내무반처럼 병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침대가 없으니 떨어질 일이 없고, 침대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일 수 있어 좁은 공간에 많은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으니 심각한 병상 부족을 겪는 대형 병원들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세 번째는, 섬망이 예상되는 모든 환자를 정신이 멀쩡하더라도 입원하고 있는 모든 기간 동안 침대에 결박하는 것이다. 언제 섬망 상태로 빠질지 예측할 수 없고, 낙상이 발생하면 무조건 병원 책임이라 하니, 정신이 멀쩡하더라도 결박을 하는 것이다. 환자는 매우 괴롭겠지만, 낙상 사고는 100%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제시한 세 가지 방법들이 모두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반전을 얘기하자면,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이 인력과 시설이 열악한 요양병원·정신병원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이 방법들로 환자들의 낙상을 예방하고 있다.
결국 적절한 대책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책임만을 과도하게 물어 이런 엉터리 후진적인 의료 현실을 확산시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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